▲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에 대한 동아일보의 오보 기사(1945. 12. 27)동아일보는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이 발표되기도 전에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이라는 제목의 오보(가짜뉴스)를 냈다. 이는 미군정과 맥아더 태평양사령부의 '공작'의 결과물이었다.
동아일보
한반도의 5년 신탁통치안이 국내 신문에 보도되면서 남한의 정국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았다. 신탁통치 소식을 처음 전한 『동아일보』는 1945년 12월 27일자에서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이란 제목의 1면 머릿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외신 보도의 형식이었다.
이 기사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3국 외상회담을 계기로 조선독립문제가 표면화하지 않는가 하는 관측이 농후해가고 있다. 즉 번즈 미 국무장관은 출발 당시에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하여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3국간에 어떤 협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명하나, 미국의 태도는 카이로선언에 의하여 조선은 국민투표로서 그 정부의 형태를 결정할 것을 약속한 점에 있는데, 소련은 남북 양 지역을 일괄한 일국 신탁통치를 주장하여 38선에 의한 분할이 계속되는 한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다"면서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이란 큰 제목을 달아 보도하였다.
이 보도를 근거로 임시정부 세력을 비롯하여 모든 정당ㆍ사회단체들이 반탁운동을 격렬하게 전개하였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반탁운동에 동조하였다. 즉각적인 자주독립만을 기대했던 독립운동가와 국민에게 신탁통치란 상상할 수 없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따라서 이념과 정파를 초월하여 반탁운동이 전개되었다.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당도 반탁대열에 섰다. 좌익세력의 경우 1946년 1월 2일부터 공식적으로 찬탁의 입장을 취할 때까지 개별적으로는 반탁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모스크바 3상회담이 진행 중인 시점에서 반탁운동에 불을 지른 이 기사는 3상회담의 내용을 신탁통치만으로 국한시키면서 미국이 즉시 독립을 주장하고,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처럼 전한 날조된 기사였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12월 25일자 미국발 기사라면서 정확한 출처도 밝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 기사가 나가게 된 배경을 놓고 국내 언론을 통제하던 미군정 당국의 단순 실수설, 반소ㆍ반탁 감정을 형성하기 위한 국내외의 모종의 음모설 등이 지금까지 제기되고 있다.
『동아일보』의 이 기사와 관련, 최근 연구 성과에 따르면 조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기사를 조작한 자는 누구였나?
"워싱턴 25일 발 합동"이라는 걸 보면 합동통신사로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봐야 할 텐데 워싱턴의 어느 매체에 누가 쓴 글인지도 밝혀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한민당 대표 송진우가 사장으로 있던 『동아일보』의 조작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동아일보』가 주범이란 것은 증거가 분명한 사실인데, 범죄의 성격으로 보아 단독범행은 아니다. 공범 내지 공모자를 밝히는 것은 명확한 증거가 없으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정용욱은 『태평양성조기』지 12월 27일자에 같은 기사가 실린 것으로 보아 맥아더 사령부 개입의 개연성을 밝혔고, 이 허위기사의 유포가 방치된 사실로 보아 군정청의 작용을 시사했다. 완벽한 실증적 증거는 아니라도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한 개연성을 보인다. (주석 5)
그러니까 신탁통치를 추구하는 미국무성 정책을 뒤집기 위해 맥아더 사령부, 미군정청, 이승만, 한민당 세력이 협력하여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