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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반 만에 '무농약 인삼' 재배에 성공한 비결

[인터뷰] 여성기업 테라영농(주) 조경희 대표

등록 2021.09.01 11:47수정 2021.09.0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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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여전사’ 여성기업 테라영농(주) 조경희 대표 . ⓒ 최미향

 
고려인삼이 잊혀지는 걸 보면서 늘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그녀는 인삼과 사랑에 빠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 아무 연고도 없는 서산 해미에서 왜 문득 미국에서 홀대당하는 한국의 인삼을 떠올렸을까. 무농약인삼을 만들어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것은 해미지역의 아픈 역사와 고려인삼의 아픈 역사가 오버랩되었던 것 같다"며 "인삼을 재배하기 위해 금산과 진안을 자주 다녔다"는 여성기업 조경희 대표를 지난 8월 30일 만났다.

농업회사법인 테라영농(주) 조 대표는 미국에서 건너와 3년 전 국적을 바꿔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서 터를 잡고 무농약 인삼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에 온 몸을 던졌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녀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어렸을 때부터 가장 재밌게 시청했던 프로가 바로 전설의 고향이었다. 1편부터 끝편까지 모두 봤는데 어떤 내용은 100번을 더 보았고 착한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인과응보·권선징악의 대표적 드라마라 좋아했다.

그때 가장 많이 나온 지명이 바로 경북 문경과 강원도 정선이었다. 훗날 은퇴하고 한국에서 정착하게 되면 정선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미를 방문하곤 단번에 반해버렸다. 다른 어느 곳보다 생동감 있고 정감이 느껴졌다."

인삼에 도전한 결정적 계기  
 

가녀린 여성의 힘으로 척박한 땅을 일궈나간 조 대표 . ⓒ 최미향

  
-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결국 '무농약인삼 인증서'를 손에 쥐게 됐다.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어떻게 인삼을 하게 됐는지?
"안 그래도 인증서를 정식 서면으로 받던 날 그것을 손에 들고 한참을 울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그 또한 지금껏 해오던 것처럼 잘 헤쳐나가리라 다짐한다.


인삼을 시작한 계기는 우리 엄마 때문이다. 몸이 자주 편찮으셨던 친정엄마가 어느날 홍삼엑기스를 찾으셨다. 미국은 한국처럼 마트가 가깝지 않다. 내가 사는 워싱턴DC에서도 약 1시간을 달려가야 홍삼엑기스를 판매하는 마트가 있다. 마침 그날은 다른 업무차 지나가다 길목에 있는 그 유기농 제품 전문마트에 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평소 인삼이 놓인 곳에 다른 제품들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근처를 아무리 둘러봐도 내 눈에 띄지 않아 마침 앞쪽에서 물건을 점검하고 있던 직원을 발견하고 물었다.

'여기쯤 있던 Korean Ginsang Items(고려인삼)는 다 어디 갔나요? 매장 다른 어딘가로 옮겼나요? 어디쯤이죠?' 키 큰 백인 매니저 아주머니가 일어나서 나를 잠시 한쪽으로 내려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 아직도 몰랐나요? 한국인삼들 농약을 100회도 더 뿌린다면서요. 인삼이 성분 좋으면 무슨 소용 있나요, 인체에 안 좋은 농약 성분이 과다함량인데요. 더는 미국이 수입하지 않는 작물이란 발표도 했을 텐데요? 아무튼 우린 진열대에서 모두 내린 지 한참 됐으니 그리 아세요!!'

마치 핀잔주듯 이야기하는 어투에 나는 속으로 '아니, 내가 인삼을 키운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저러시나. 없다. 더는 안 판다'고 간단히 얘기하면 될 일을 바빠 죽겠는데 왜 저런 눈빛으로 불필요한 설명까지 나한테 하는거지..? 백인우월주의자인거야 뭐야?!!'

급하니 불쾌한 기분으로 일단 매장을 나왔다. 그리고 하던 업무를 마무리하고 A사 홍삼엑기스를 판매한다는 한국인 매장을 애써 찾아가 홍삼제품을 사다 친정엄마께 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설마 정말 그렇게나 많이?! 귀한 한국 인삼을 농약 없이 키우면 안 되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잊고 살았다. 그러다 대한민국 서산시 해미면을 방문하게 됐고 홀연히 지인을 통해 듣게 된 인삼재배법을 고려하다 보니 그때의 그 일화가 내 머릿속에 가득 떠올랐다."
 

늪 같던 수렁의 뻘을 모두 퍼내 완성된 연못 . ⓒ 최미향

  
- 그렇다면 미국에서 한국으로 나오면서 연고지도 없는 서산 해미에 어떻게 정착하게 됐나.
"미국에 살 때부터 남편은 한국에 계시는 큰 스님과 소통이 있었다. 한국에 올 일이 있던 차 출국 이틀 전에 그 당시 지인께 인사를 드리고자 연락을 취했고, 마침 해미에 계시다고 했다. 서울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고국여행도 할 겸 서산에 내려왔는데 해미에 도착한 순간부터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단다.

사실 남편의 고향이 예산인데 그곳이 서산 바로 옆이라는 걸 안것도 그때였다. 남편은 비자를 더 연장했고, 결국 그해 12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절기를 수차례나 흘려보내고 고국 땅을 밟은 나는 우리나라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도 놀랐고 농촌을 모르던 나는 그 아름다운 경관에도 매일 감동하며 초록빛깔 풍성함에 힐링받으며 행복했다.

특히 해미의 조용하면서도 주말의 활기찬 모습에 우리 두사람은 이미 반해 있었다. 그리곤 '정착하여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나는 바로 국적을 바꾸며 귀농을 결심했다."
 

황토아궁이 앞에는 아이들 이름을 새겨 넣고 보고싶을 때마다 그 앞에 앉는다. . ⓒ 최미향


- 하우스 앞에 만들어진 황토 아궁이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57년이나 걸려 아궁이를 만들었다는데 무슨 뜻인가.
"남편은 평소에도 늘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뼈를 묻으러 가면 나는 반드시 아궁이가 있는 집에서 닭 세 마리, 소 두 마리, 오리도 쌍을 키울 것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래서 해미에 터를 잡고 살며 안정감이 느껴질 때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바로 가마솥이 걸려있는 아궁이를 만든 작업이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보고픈 가족들이 생각나면서 추억에 잠긴다. 아무런 연고지 하나 없는 해미에서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세에 살고는 있지만, 아궁이 앞 내 아이들의 이름을 보면 함께 하듯 위로받고 그러다 또 그리움에 울컥울컥 목이 메어 오기도 하고.

아궁이, 남이 보면 별거 아닐지 몰라도 그렇게 우리에게는 57년이나 긴 시간이 걸린, 가족을 위해 준비한 안식처에서의 소중한 마음이 담겼다, 무농약인삼을 키우기 위해 하우스에서 밤을 새울 때도, 인삼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실망을 느껴 마음이 괴로울 때도 이 아궁이 불길을 바라 보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이름도 하나씩 불러본다. 어서 기반을 이루고 함께 할 일념으로 마음이 서둘러지니 오늘도 뛸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된다."
 

조경희 대표의 인삼 스마트팜 농장 . ⓒ 최미향

  
- 미국에서 들어와 귀농을 결심하기까지, 그중에서도 '무농약인삼'이란 특수작물을 선택하기까지의 고민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우리는 몸이 좋지 않을 땐 늘 인삼을 애용했던 사람들이라 생각처럼 많은 갈등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없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의료비가 보통 비싼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 친정엄마는 몸이 좀 이상하다 싶으면 인삼을 찾으셨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권고받은 인삼을 선택했지만 막상 덤비려니 정작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더 걱정을 해주었다.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 그것도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사람이 (인삼)되겠느냐?"며.

먼저, 적임자 선정을 위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알고 있던 과학적 지식과 터득한 자료들을 만들고 연구하여 브리핑 자료를 만들었다. 자금을 받기가 결코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는 결국 귀농·귀촌 정책자금을 받아 인삼 스마트팜 농법을 전개하게 됐다.

물론 도중에 시설팀들의 실망스러운 일로 마음고생도 있었다. 그렇지만 하늘은 반드시 스스로를 돕는,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기억하며 그 하늘이 우리를 살피심에 감사하면서 한발 한발 걸어 나가다 보니 또 좋은 일도 생기더라. 오늘 이 시간까지 잠을 줄여가며 노력했던 남편의 피와 땀 섞인 연구 과정들이 '무농약인삼 인증서'란 결과물로 나타난것에 감사한다."

텐트에서 1년간 살며 겪은 일들 
 

자식처럼 소중한 인삼을 보면 가슴이 뜨겁다는 조 대표 , ⓒ 최미향

  
- 무농약인삼 스마트팜 농사를 짓는 바람에 미처 집을 구할 틈도 없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마땅히 기거할 곳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생활했나?
"의식주에 대한 걱정은 별로 안 했다. 환경도, 전에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워낙 많이 한터라 지금 인삼재배단지 옆 바닥에 팔레트를 깔고 그 위에 조그만 텐트를 치고 1년을 살았다. 정말 힘은 들었다. 겨울 3개월간은 텐트 안이 너무 추워 결국 인삼하우스 안으로 옮겨 생활도 했다.

웃지 못할 사건도 있다. 추운 겨울 어느날, 남편이 일하다 말고 텐트 안에 물건을 가지러 갈 일이 있었다. 그때 검은 것이 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뭔가 싶어 가까이 다가갔더니 글쎄 그것은 바로 커다란 회색 쥐였다고.

텐트안 이불을 들춰내며 자세히 살펴보니 팔레트 아래에서부터 텐트 바닥에 구멍을 뚫고 쥐가, 여름엔 뱀이 올라와 함께 기거하고 있던 셈이다. 남편은 너무도 놀라 기겁을 했단다. 그 당시 만약 그 사실을 내게 말했다면 더 이상 텐트 생활은 못 했을 거다.

꿈의 힘이 참 대단한 것은 우리 부부에겐 텐트 생활도, 컨테이너 생활도, 원룸 생활에도 위축되지 않았다. '무농약인삼을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온통 머리를 덮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사람은 자고로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을 이길 재간은 없나 보다."
 

2년 반 만에 '무농약인삼' 인증서를 받았을 때의 감동은 결코 잊을 수 없다. . ⓒ 최미향

  

- 2년 반 만에 '무농약인삼'이란 성과를 냈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정말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 2019년 한국에 나와 농업회사법인 '테라영농(주)'를 준비하면서 인삼업계 시장조사를 해나갔다.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도 '인삼 취약상 농약을 안 줄 순 없다' '과거의 노지재배형태로는 이상기온 노출과 여러 이유로 농가들의 생계가 날이 갈수록 어렵다. 대책이 시급하다,,' 등, 수많은 사연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삼업계 대부분 종사자가 무농약인삼에 대한 의견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면서 이상기온 대비책 대안은 '스마트팜 농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가의 설치비용으로 농가들은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함부로 뛰어들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까운 현실을 접하면서, 당시 미국 매장에서 한국인삼을 찾았을 때 비웃는 듯한 키 큰 백인 매니저 아주머니가 퍼뜩 떠올랐다. 그랬다. 우리가 빚을 내면서까지 궁극적으론 무농약으로 방향을 잡아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향후 국제시장에서 다시 대한민국 인삼이 부활할 수 있도록, 제대로 위상을 되찾아 굳건히 설 자리가 재건될 수 있도록 이 업계에 뛰어든 이유이자 사명으로 심겨졌다.

힘든 과정에서 어렵게 어렵게 이끌어 왔던 무농약인삼의 꿈. 결국 2년 만에 성공적으로 받아내며 다리 뻗고 엉엉 소리 내 울었던 눈물은 어쩌면 우리네 오랜 고려인삼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아직은 작기만한 발버둥의 감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인삼'이란 두 글자에 사활을 걸고 부지런히 뛰어 다니며 매진하고 있다."

 

무농약인삼 검정증명서, 이날 조 대표는 "다리 뻗고 엉엉 소리 내 울었다"고 했다. . ⓒ 최미향

 

테라영농의 클라이언트 1호점 현장관리 . ⓒ 최미향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농약 하시는 분들이 중도 포기하신 경우가 많았다. 너무 많은 에너지가 투입된 데 비해 생산은 안 되고 버틸 재간이 어디 있겠나. 이런 어려운 상황들을 보면서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테라가 전개하는 이 일이 대한민국의 허물어져 가는 인삼 농가들에게 회생할 귀중한 기회의 초석이 될 것이란 것을. 소망이 있다면, 이로 인해 앞으로 탄생할 귀한 무농약인삼들이 많은 이들께 건강의 이로움을 제공하며 국제적으로 실추된 우리민족 5천 년 역사의 자존심을 복구시키는 데 이바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테라가 포기하지 않고 가는 이 길은 바로 대한민국 고려인삼의 명예를 되찾는 길이라 믿으며 오늘도 전진한다."
 

함께 할 날을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가족이 힘의 원천이라는 조경희 대표 . ⓒ 최미향

 
누가 봐도 여린 여자의 몸으로 무농약인삼을 돌보고 있는 조경희 대표. 그녀는 대한민국의 인삼 여전사답게 당당하고 확고하게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믿으며 힘주고 계신 감사한 분들께 되돌릴 은혜를 준비하고자 하는 나의 서원과, 멀리서 기도 가운데 함께 할 날을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너무나 사랑하는 아이들과 온가족의 응원 덕분에 오늘도 뛸 수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무농약인삼 스마트팜 농장 #테라영농 조경희 대표 #인삼 여전사 여성기업 #테라영농(주) 조경희 대표 #고려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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