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시작한 공부가 더 뜨겁고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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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는 40세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인 <나목>으로 등단했다. 작가님은 엄마가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져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을 때나 식구들이 다들 잠든 한밤중에 글을 썼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40대의 주부가 소설을 써서 등단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기에 작가님에게는 언제나 '늦깎이 신인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님의 집필 기간은 돌아가실 때까지 40년 동안 지속되었고,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박완서 작가님에게 글쓰기는 단순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도전의 의미만은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다섯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 살다가 자신의 삶 속에서 무언가 풀어내고 써내야만 할 것 같은 그 마음을 붙잡고 매일 조금씩 써내려간 건, 어쩌면 단순히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박함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진 켈리 최는 '켈리델리'라는 요식업체로 유럽을 평정한 사업가로 유명하다. 그녀의 도시락 사업은 숱한 좌절과 실패 이후, 마흔이 넘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도전이었다.
더 이상 버릴 것도, 내려갈 곳도 없는 순간에 시작한 만큼 그녀는 자신의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바쳤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녀의 여러 가지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어쩌면 많은 일들을 겪을 만큼 겪고 난 뒤, 그 연륜에서 오는 치열한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중년만 느낄 수 있는 도전의 즐거움
20대의 선택으로 평생 직장이 결정되어 살아가는 시대는 지났다. 나의 경우만 해도 40대가 되어서도 새롭게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마흔 이후 자신의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 A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며 공부를 하고, 자신이 직장을 다니며 생각했던 일들을 글로 써내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 B는 최근 아로마테라피를 기초부터 공부하여 국제 자격증을 따고 새롭게 창업을 했다.
회사를 다니다 사업에 도전을 한 경우나 이직을 하는 경우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보다 불안해하거나 조급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야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은 것 같다'라고 말하며 상기된 표정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듯 여겨졌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나서 대학원에 들어갔다. 학부 때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인 상담을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30대 중반이었던 나는 그 때, 갓 대학을 졸업하고 온 20대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며 내가 너무 늦었다는 생각으로 한없이 초조했다.
그런데 상담 관련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가거나 워크샵을 들으러 다니면 40대, 50대로 보이는 분들이 상당수였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참 열심히 수업을 듣고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자세를 보여주셨다. 50세에 상담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하시고 60에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는 교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그분들의 나이가 된 지금 돌아보니, 그때 그분들이 내뿜던 치열한 에너지와 열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의 친구들은 체력이나 암기력, 영어실력 등은 우수할지 몰라도, 학문에 대한 진지한 자세나 이해력의 깊이는 늦깎이 학생들이 가진 강점이었다. 그분들은 젊은 친구들의 고민을 품어주고 학업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주시기도 했다.
나의 경우에도 뒤늦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서 시작한 만큼 공부에 대한 마음가짐이 20대에 대학을 다녔던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두 아이를 키우다 들어갔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너무나 여유가 없었는데, 그만큼 학교에 가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밤잠을 줄여가며 과제를 하고...
그 모든 순간이 너무나 힘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달콤한 꿀같은 희열이 있었다. 마음을 다해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었고 정말 잘하고 싶었다. 20대부터 공부를 한 친구들에 비해 혹시 늦은 건 아닐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해야만 해서 공부를 했던, 20대까지의 공부나 취업 준비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공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공부, 내 전공'이라는 느낌으로, 자석에 끌리듯 치열하게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점은, 나이가 들수록 좀 더 이해의 폭이 깊어지고 사고의 틀이 더 유연해지는 부분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꼭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