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동화면세점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는 시그네틱스 1차 해고노동자 남옥연씨
연정
7월 14일 저녁, 동화면세점 앞 선전전에서 만난 남옥연씨가 당시를 회상한다. 옥연씨는 거평이 인수하기 직전인 1994년에 입사해서 반도체 리드핀 형태를 만드는 트리폼 공정에서 근무했다. 나승렬 회장이 이쯤에서 확장에 대한 욕망을 잠시 접었다면 지금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파주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까? 영풍이 인수하는 일만 없었다면 비정규직화나 노조탄압의 화살을 완전히 비껴가지는 못했다 해도 네 번의 해고는 피할 수 있었을까?
그것 때문에 인생이 꼬일 거라고는...
거평은 1995년 시그네틱스 인수 후에도 기업 인수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적자기업 태평양패션 등의 부채까지 떠안으며 인수합병을 계속했고, 급기야 부채가 1조 6500억 원에 달하게 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IMF 외환위기'라는 1998년 초에도 한남투자증권을 인수했다. 결국 1998년 5월 거평패션 등 3개 계열사가 만기도래한 어음 13억 원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난다.
시그네틱스도 위험에 처했지만,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 업체에 선정되면서 회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경영권을 박탈당한 나승렬 전 거평 회장은 경영권 반환소송을 제기했으나 안타깝게도 패소하고, 시그네틱스의 소유권을 되찾으려는 노력도 실패한다.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상여금 반납, 호봉승급 보류, 퇴직금 누진제 폐지 등 임금삭감으로 고통분담을 하며 위기 극복에 함께 했다. 그 결과 시그네틱스는 2년도 되지 않아 워크아웃 조기졸업에 성공한다.
그런 시그네틱스를 2000년에 인수한 게 영풍그룹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풍은 1994년 대한중석 인수전에서 15억 원 차이로 거평에게 밀린 적이 있다. 거평그룹이 해체된 이후 배임·횡령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던 나승렬 전 회장은 해고된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투쟁하는 동안 호화 해외 도피생활 등을 하며 잘 살았다고 전해진다.
올해 네 번째 해고를 당한 김양순씨는 파주공장 첫 삽을 뜨는 착공식을 했던 1996년 초를 잊을 수가 없다. 염창동 공장 노동자 백여 명이 참석했던 그 자리에 양순 씨도 참석했다.
"끝나고 메기 매운탕을 먹었어. 그 매기매운탕 맛이 아직도 짜릿해. 매콤하고 시원하고 수제비도 쫀득쫀득 하고. 술도 한 잔 씩 했을 거야. 그때는 뭐 잔치 분위기였죠. 우린 당연히 파주공장으로 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렇게 비협조적이지 않았어요. 공장도 크게 짓고 공기도 좋고 통일되면 북한도 가깝고 괜찮겠다 생각했어요. 새 땅에 새 건물 짓는 게 너무 기뻤지.
그것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꼬일 거라곤 생각을 아예 못했어요. 통근버스 이사비용 다 해주다고 했으니까. 회사는 뒤로 딴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가 순진해서 몰랐을까? 무노조에 비정규직으로만 경영을 해야 하는 재벌(영풍)이 인수하다 보니 우리가 계속 해고를 맞지 않았나. 그때 산업은행이 잘 골라서 인수자를 정했으면 좋은데, 다 알고 지내는 사람끼리 손을 써서 했겠지."
양순씨는 거평이 파주에 공장을 지을 때 파주에 건물을 하나 샀으면 지금 편하게 살 거라고 했다. 건물주가 될 기회를 앞에 갖다 줘도 모르니 사람이 다 자기 그릇대로 사는가보다 하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