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한 자료들.
전윤정
7월 한 달간 '1일1폐'(매일 하나씩 버리기) 인증모임을 하며 '비우는 즐거움'을 알게 된 후, 나는 혼자서 '1일1폐'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 비워내는 내 의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쉰 살에 들인 새 버릇도 여든까지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우선, 버려두었던 내 블로그에 '1일1폐'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느슨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하루라도 빠지면 커피를 사겠다고 친구와 약속했다.
추억을 디지털화하다
지난 6월, 대학생인 두 딸이 유치원생일 때부터 모아둔 그림, 독후감, 상장 등등을 나는 사진으로 남기고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1일1폐'의 몸풀기였던 셈이다. 그런데 베란다 수납장 한편에서 다른 물건에 섞여 또 한 뭉치 나왔다.
지난번엔 학교 상장을 버리기가 힘들더니, 한 번 버려봤다고 사진 찍고 버리는데 별 감흥이 없다. 초등학교 그림대회 상장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는지 웃음이 났다. 잠깐의 기쁨과 만족일 뿐 시간이 지나면 종이 한 장에 불과한데 말이다.
헌 이를 새 이로 바꿔준다는 '이빨 요정(tooth fairy)'에게 쓴 옛 편지도 나왔다. 유치를 뺀 날에 아이들이 이와 편지를 넣은 주머니를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면, 나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와 답장 편지로 바꿔 놓았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은 좋아하며 500원을 들고 문방구에 가던 시절이 생각났다. 우연히 '이빨 요정'이 아닌 엄마가 답장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 날,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추억을 생각하며 한 장 한 장 찍는데 이번에는 내가 눈물이 났다. 마냥 해맑았던 아이들의 시간이여, 이제 안녕!
추억의 디지털화는 내 물건으로 이어졌다. 옛날 편지, 수첩, 일기장이 들어 있는 커다란 판도라의 상자를 드디어 열었다. 일단 수첩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중요한 메모는 글이니까 사진보다는 워드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작업을 마친 수첩을 날마다 하나씩 버렸다.
1994년 이전 대학생 때 수첩을 다시 보니 나는 '명언 채집자'였다. 광고회사를 취업 목표로 했기 때문인지 "광고는 과학이 아니라 설득이다", "팔리지 않는 것은 크레이티브가 아니다"와 같이 광고와 관련된 명언이 특히 많았다.
신문에 실린 <오늘의 명언>을 오려 붙인 스크랩도 있었는데 -당시 신문에 한자를 혼용해서 썼던 것이 새삼 기억났다- '독창적 작가란 누구의 모방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그를 모방할 수 없는 사람이다(샤토 브리앙)'에만 형광펜이 덧칠해져 있었다. 올해 첫 책을 내고, 30여 년 전 낡은 신문 속 문장을 들여다보니 기분이 묘하다.
1995년부터는 방송작가 시절이라 기획 아이디어, 다른 방송 프로그램 모니터 메모가 많았다. 노래나 영화 제목도 눈에 자주 띄는데, 노래(앨범) 옆 기호와 숫자는 방송국 자료실 CD 번호인 듯하다. 예전에는 라디오 생방송에서 '즉석 신청곡'을 받으면, CD를 가지러 피디나 작가가 자료실로 뛰어가곤 했었다. 요즘은 라디오에서는 음원(파일)으로 틀어주니 그런 수고로움도 없어졌겠지.
옛날 수첩을 버리고 시심(詩心)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