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바탕은 국민의당 전용 색상이다.
오마이뉴스
1962년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의대 입학 후 사람을 치료하는 일과 컴퓨터를 치료하는 일에서 모두 두각을 보인 천재. 낮에는 사람을 치료하고 밤에는 컴퓨터를 치료하는 백신개발을 병행하는 투잡을 7년 정도 이어가다 안철수연구소를 세워 안정된 의사 직업이 아닌 백신개발을 선택한다. 1990~2000년대에 컴퓨터를 사용했던 사람이라면 안철수가 배포한 무료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V3를 써보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
당시 인지도가 높았던 안철수는 2006년 서울시장 한나라당 후보 제안, 참여정부 정보통신부 장관직 제의 등 일찌감치 여야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정치권과는 선을 그었다. 이명박정부 시절, 여야 모두에 국민들이 기대를 걸지 못하던 상황 속에서 성공한 CEO이자 바이러스 백신을 전국민에게 무료로 배포한 사회활동가로서의 면모를 지닌 안철수는 국민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1년 8월 무상급식 반대에 정치적 승부수를 걸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한 뒤 안철수는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호명됐다. 하지만 당시 지지율 5%였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지지하며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후 자리를 탐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청렴한 이미지까지 얻으며 일약 대선후보로 떠오르며 '안철수 현상'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다.
2012년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에서는 당시 박근혜 후보와의 일대일 가상대결에서 박 후보까지 이기는 것으로 나오자, 안철수가 대선에 나오길 바라는 각계각층의 압력 속에 2012년 9월 18대 대선에 후보로 나섰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 속에서 후보직을 사퇴하며 문 후보를 지지했지만, 매끄럽지 못한 단일화 과정에서 생긴 일들은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안철수와 문재인의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안 대표는 1일 국회에서 대선 출마 선언식을 열어 "당선된 후 임기 중반에 여야가 합의하는 조사 방법으로 국민의 신뢰를 50% 이상 받지 못하거나, 또는 22대 총선에서 제가 소속된 정당이 제1당이 못 되면 깨끗하게 물러나겠다"라며 세 번째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