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사물함 안에 넣어둔 마니또의 작은 선물과 손편지입니다.
진혜련
4학년인 우리반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게임이 있다. 학교폭력예방 교육활동의 하나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이 게임을 한다. 이건 80년대 생인 나도 학교 다닐 때 해봤던 놀이다. 마니또 게임. 제비뽑기를 하여 정해진 친구에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몰래 선물이나 선행을 베푸는 활동이다.
우리반에서 마니또 게임을 할 때는 우리만의 규칙이 있다. 마니또는 친구에게 2000원이 넘지 않는 작은 선물과 손편지를 줘야 한다. 아이들은 대개 선물로 초콜릿, 쿠키, 음료수 등의 군것질거리나 연필, 수첩, 스티커 같은 문구 팬시용품을 줬다.
이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손편지'다. 마니또 게임을 하면 자칫 선물 주고받기로 끝날 때가 많다. 나는 그보다 아이들이 이 게임을 통해 손편지를 쓰면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길 바랐다. 정성을 담아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우리를 얼마나 따뜻하고 다정하게 만들어주는지를 알아갔으면 했다.
편지에는 친구의 장점, 칭찬을 꼭 쓰도록 했다. 또한 친구에게 힘이 되는 응원의 메시지도 전하게 했다. 친구의 좋은 점을 쓸 때는 두루뭉술하게 '넌 착해', '넌 잘해'라고 쓰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콕 집어 최대한 구체적으로 풀어 쓸 것을 강조했다. 그래야 친구가 감동을 받는다고. 마니또는 친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임무다.
마니또 게임은 들키지 않는 게 관건이다. 아이들은 친구가 안 보는 사이 재빠르게 책상 서랍이나 사물함에 선물과 편지를 넣어둔다. 준비물을 꺼내러 무심코 사물함 문을 열었는데 거기에 달콤한 초콜릿과 노란색 편지 한 통이 놓여 있다면. 그럴 땐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도 슬며시 나에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선생님, 저 마니또한테 선물이랑 편지 받았어요."
반달이 된 아이 눈을 보니 아이의 마니또는 미션을 성공한 것 같았다.
그동안 마니또 게임을 하며 아이들은 편지를 여러 번 썼다. 문자, SNS 등 쉽고 편하게 용건을 전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지만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신중해지는 편지를 써보았다.
처음에는 연습장을 쭉 뜯어 편지를 쓰던 아이들이 차츰 예쁜 편지지를 준비해 와 쓰기 시작했다. 평소 성격이 급해 휘날리는 글씨를 쓰던 아이도 편지를 쓸 때는 한 글자 한 글자 단정한 글씨로 썼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편지를 선뜻 채우지 못하던 아이들도 이제는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 내며 오랫동안 편지쓰기에 열중한다.
천천히 다가가, 깊숙한 진심을 전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