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 드가여~고춧가루가 잘 섞이도록 박박 문질러 주어야 양념이 골고루 잘 배게된다.
박선경
누룽지가 된 볶음밥까지 한 입... 이 환상의 코스
마지막으로 주꾸미의 맛을 좌우하는 게 불맛이 아닐까 한다. 물론 숯불에 직접 굽는 것도 맛있겠지만, 집에선 매번 숯을 준비하기도 번거롭고, 짧은 일정의 캠핑에서 숯이 만들어지기까지 기다리는 것 또한 만만치 않다.
내가 늘 쓰는 불판은 미국에선 'Cast Iron'이라 불리는 무쇠 불판이다. 아직도 Cast Iron 팬만을 고집하는 미국 주부들이 여전히 있긴 하지만, 장성한 남자들이 들어도 무거울 만큼 손목이 나가기 십상인 이 불판은 상당한 수고가 따라야 하는 요리 장비이다.
또, 매번 쓰고 난 후 세제 없이 뜨거운 물로 세척한 후 기름을 발라 불에 굽는 시즈닝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두꺼운 불판 전체의 온도가 천천히 달아오르고 오래도록 유지되는 탓에 쉽게 타지 않고 불맛을 낼 수 있는 이 무쇠 불판은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나도 무쇠 불판을 오랫동안 쓰느라 손목이 남아나지 않긴 했지만, 불맛을 내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생각하기에 아직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애용하고 있다.
간편한 요리기구와 일회용품이 난무하는 캠핑장에 나타나, 이 무쇠판에 주꾸미를 구우면 모두들 와~ 하는 감탄사와 함께 마치 비싼 일본 철판구이집의 셰프를 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준비 과정에서 어느 정도 삶아진 주꾸미인지라, 10여 분 정도 익히면 이미 완성된다. 준비해 간 야채에 밥을 조금 넣고 한 줌에 싸서 입에 넣고 들이키는 한잔 소주의 맛. 안 먹어본자는 있어도 한 번 먹어본 자는 없다는 내 이름 석자 달린 '마징가 아줌마표 주꾸미'.
건더기를 모두 건져먹고 조금 남아있는 재료에 찬밥을 털어 넣은 후, 바삭한 김가루 부수어 뿌리고 깨소금 솔솔 뿌려 볶아주다가 무쇠판에 꾹꾹 눌러 밑바닥이 바삭하게 익도록 해먹는 볶음밥을 한 번쯤은 먹어봤을 것이다. 제 아무리 다이어트 중인 사람도 그 유혹을 떨치긴 가히 어려운 일이다.
▲쭈꾸미 철판 볶음밥누룽지 누르듯이 꾸욱 눌러 만드는 이 볶음밥은 저탄고지 다어어트 수행자들에겐 공공의 적. 거부할 수 없는 맛이다.
박선경
사막의 나라 캘리에도, 어느덧 맹렬한 더위가 물러나고 유칼립투스 나무 그늘 아래로 선선한 간간히 바람이 불어오다가 한 번의 가을비가 내리고 나니 서늘한 밤 기온이 체감되는 날씨가 곧 이어지고 있다. 이런 모습으로 짧게 잠깐 머물고 떠나는 것이 캘리의 가을이다. 인간도 짐승도 살찌게 되고 한없이 따뜻한 것을 찾게 되는 이러한 계절에 이루어지는 캠핑 메뉴에는 어김 없이 나의 주꾸미가 등장한다.
가을이 깊어지고 어쩌다 한밤 중 기온이 화씨 3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라도 될 때면 여지없이, 맛있게 익어가면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불판에서 살짝 그슬려진 검붉은 빛의 주꾸미가 뜨겁게 유혹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마시는 한잔 소주만으로도 얼큰히 취하기 십상인 가을밤에, 나를 홀리는 주꾸미의 자태며 그 맛은 자못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맛을 제철에만 느끼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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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세상구경과 집밥사이에서
아슬아슬 작두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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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히트 상품, 이 맛있는 걸 어찌 제철에만 먹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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