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송파구 방사능 안전 급식 조례> 서명에 한 주민이 참여하고 있다.
최지선
"실례지만, 이거 왜 하시는 거예요?"
'송파구 방사능 안전 급식' 조례 제정 청구 신청서를 제출하러 갔을 때, 담당 공무원에게 이 질문을 받고 매우 당혹스러웠다. 신청서를 제출하면 바로 수리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20여 분가량 담당 공무원에게 왜 해당 조례가 필요하며, 왜 굳이 1만 명이 넘는 주민들의 서명을 통해 조례를 만들려고 하는지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담당 공무원도 "구정 이래 송파구에서 주민참여조례가 만들어진 적이 없어서" 또는 "이런 업무가 처음이어서"라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만큼 주민참여조례 사례가 많이 없기 때문이겠다.
최근에 들은 인상적인 말이 있다. 우리는 4~5년마다 돌아오는 선거를 통해 투표에 참여하는데 이건 더 적극적인 정치 참여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이는 대의 민주주의의 모순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들에게 법을 만들거나 정책을 집행할 권력을 부여하며, 이들이 유권자 뜻대로 정치활동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뒷간 갈 때와 올 때 마음 다르다고, 당선 전후로 상반된 정치인들 모습을 우리는 반복적으로 봐 왔다.
그런데, 유권자들이 직접 법을 만들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어떨까?
담배자판기 금지, 안전 급식... 시민도 만들 수 있다, 필요하다면
'주민참여조례(또는 주민발안조례)'라는 제도가 있다. 1999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주민조례 제·개·폐 청구제도가 도입됐는데, 일정 수 이상 유권자의 서명을 통해 주민들이 지방의회에 조례의 제정·개정·폐지를 발의할 수 있는 제도다.
'대표청구인' 주민이 조례안을 구청에 접수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서명을 요청한다. 일정 기간 이내에 일정 수 이상 서명이 모이면, 구청의 심사를 거쳐 지방의회에 부의된다. 끝으로 의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조례가 만들어지게 된다.
주민들의 직접 참여로 조례가 만들어진 첫 사례는 1992년 '부천시 담배 자판기 설치 금지 조례'다. 이는 1999년 주민참여조례 제도가 도입되기도 전이다. 주민들이 청소년 보호를 위해 담배자판기 설치를 금지하는 청원을 하여 조례를 만든 것이다.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해당 조례에 대한 청원 운동이 확산되었다.
1999년 생긴 '주민참여조례'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학교급식지원 조례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학교 급식이 처음 시행되는 과정에서 원산지 비리, 식중독 집단 발생, 질 낮은 재료 사용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이에 지자체 재정으로 안전한 학교 급식을 지원하는 학교급식조례 운동이 전국 100곳이 넘는 지역에서 일어났다. 일부 지자체 의원들은 적극적인 주민발의에 자극을 받아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