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중단된 지금은 서로의 마음을 여행하는 중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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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역할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은 그 사람의 본 모습도 변형시키는 것 같았다. 아이들과 학습의 의미를 뺀 둘의 여행에서 남편의 '박학다식'은 빛을 발했다. 재미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원래 다른 사람을 웃게 하는 말재주를 가졌더랬다. 거기에 중년 이후로 조급함은 한결 누그러졌다. 가끔 얘기를 거들면 대화는 더 풍부해졌다. 평범한 길과 사람 사는 모습에서도 의미를 찾았고, 지식의 충족 없이도 감동이 있었다.
지난 2년간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어려웠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국내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국내 여행은 마음부터 푸근했다. 어느 날은 용문사 쪽으로 코스를 잡아 떠났고, 어느 날은 대둔산에 가서 정상을 밟고 서해의 낙조를 보고 왔다.
아무 준비 없이도 새벽같이 출발해서 부산과 포항을 거쳐 동해를 돌아 2박의 일정을 가뿐하게 소화하기도 했다. 예약도 없이 떠났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날이 저물면 하루 더 보내고 돌아와도 걱정할 일이 없었다.
온전히 내 것을 누리는 느낌이었다. 느긋함과 여유를 맛본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둘만의 여행에 이미 익숙해졌다. 새벽에 말없이 떠나 낮시간쯤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며 여행을 통보하거나, 여행을 공표하고 나섰다가 당일 밤늦게 불쑥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도착해야 할 날짜에 오지 않아도 아이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통보만 해 주면 스스로 밥도 챙기고 집도 챙겼다.
우리의 잦은 여행을 두고 딸은 둘의 합이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딪히는 대목 없이 활발하게 소통하는 상황을 신기해 하기도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언젠가부터 긴 대화도 피곤하지 않았고 눈치를 보며 조심할 필요도 없었다.
가치나 지향도 비슷했다. 어쩌다 상대의 말에 엉뚱한 첨언을 해도 가볍게만 받지 않았고 다른 생각도 가능한 세계를 열었다. 부부생활 30년의 내공이라고 딸에게는 간단히 정리했다. 가고 싶은 곳이 생각나면 지체 없이 실행했다. 다음 주, 다음 달로 미루지 않았다. 불가능한 조건이나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었고 둘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오십 이전까지 투닥거리며 힘들었던 시간만큼 오십 이후로 의견의 조율은 빨라졌고 둘이 함께 하는 시간에 정성을 다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요즘이다. 말하자면 둘의 시간에 우리는 진심이다.
지금은 딸도 우리 사이를 부부의 연을 맺은 '찐친'으로 이해한다. 부부관계란 원래 그런 것일까 궁금해 하지만, 서로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우리는 나이 쉰을 지나며 여행을 통해 비로소 서로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한 것 같고, 그런 서로를 열심히 돌보는 중이다. 지난 시간을 용서도, 응원도 하면서.
남편이면 용서할 수 없는 일도 친구라면 용서할 수 있다.
아내라면 응원할 수 없는 일도 친구라면 응원할 수 있다.
그런 사람도 많지 않을까?
- 요시토모 유미, <오십부터는 우아하게 살아야 한다> 중
얼마전 갑작스러운 남편의 병으로 우리의 여행은 잠시 중단되었다. 지금은 잠시 이 계절의 다른 면을 보는 시간이고, 서로의 마음을 여행하는 중이라 여긴다. 여행이 아니어도 우리의 일상과 대화는 여전하다. 서로의 독특함을 확인하고 확인받으며. 그리고 내년 봄이면 다시 여행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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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이었던 남편과의 여행, 오십 넘어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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