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고양이는 나보다 먼저 늙어 이제 양지에서 꾸벅꾸벅 조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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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털아, 오래오래 날려라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고양이의 노화를 알아차린 뒤로 나는 더 잘 살고 싶어졌다. 틈이 날 때마다 고양이들과 눈 맞춤을 하고, 일을 하다가도 잠시 짬을 내서 자고 있는 녀석들의 따끈한 몸을 쓰다듬는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고양이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사랑하는 존재의 늙음을 보는 일은 정말로 쉽지 않지만, 그만큼 생의 유한성을 절절하게 깨닫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요즘 나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예전에는 감정이 요동치는 게 싫어서 관련 주제를 기피했었지만 이제는 언젠가 내게도 닥칠 일이라는 걸 인정하고 먼저 겪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는다. 대화를 나누다 귀한 팁도 얻었다.
반려동물에게 노환이 오면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커지니 미리 예금이나 적금을 활용해서 따로 돈을 모아두면 좋다는 것. 이사를 할 때면 집 근처 24시간 동물병원 위치와 가는 길을 가장 먼저 파악해두라는 것. 사진과 영상을 틈 날 때마다 많이 찍으라는 것. 나는 먼저 겪은 이들이 나누어주는 이런 이야기들을 소중하게 받아 마음에 담는다.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고양이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더 충만하게 보낼 수 있도록.
물론 아무리 주변인에게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다잡아도 나이 든 고양이와 사는 한 불안은 언제나 내 곁을 서성일 것이다. 나는 녀석들의 음수량이 줄면 줄어서, 늘면 늘어서 걱정을 하게 될 거다. 어쩌자고 고양이를 내 마음속 가장 말랑하고 연약한 곳에 입주시켜서 이 사달을 냈을까.
하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고양이가 처음 내 몸에 찹쌀떡 같은 앞발로 꾹꾹이를 하던 그날, 슬그머니 다가와 처음 내 허벅지를 베고 자던 그날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잠 많고 털 많고 세모난 입을 가진 생명체와 기꺼이 생을 함께 하리라는 걸. 그로 인해 많이 웃고 많이 울기도 하리라는 걸. 가끔은 불안을 쓰다듬으며 밤을 보내기도 하리라는 걸. 이미 알고 시작한 일이다. 그러니 괜찮다. 부디 우리 집에 고양이 털이 오래오래 흩날리기만 바랄 뿐.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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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늙는 아이... 불안이 실제가 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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