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이 아플 때 반려인들은 쉽게 불안해지고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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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추천으로 이 병원에 처음 갔을 때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대체로 반려동물과 함께 있어도 사람들은 보호자인 내게만 인사를 건네오곤 했다. 하지만 이 병원에 처음 등록을 하던 날 스태프들은 나는 물론 은이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네가 은이구나. 예쁘게 생겼네"라고 인사를 건네주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진료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곳에서 불안해하는 은이에게 원장님은 "처음이라 조금 불안하지?"라며 은이에게 말을 건넸다. 은이를 대하는 눈빛과 손길이 꼼꼼하면서도 따스했다. 나는 그날 동물병원을 다녀오고 나서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이곳은 은이의 단골 동물병원이 되었다. 초콜릿을 과다섭취하고, 닭뼈를 삼켜 큰 위기를 겪었을 때도 은이는 이곳에서 따뜻한 진료를 받았다. 특히, 초콜릿을 먹었던 날 은이는 밤새 지켜봐야 할 상황이었다.
그날 원장님은 은이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셨다. 병원에도 입원실이 있지만, 밤새 관찰이 필요한 아이들은 집에서 돌보신다고 했다. 원장님은 거실에서 은이와 함께 주무셨다고 했다. 병원보다 따뜻한 가정집 케어를 받아서일까. 은이는 밤새 컨디션을 많이 회복했고, 다음 날 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이 병원에 갈 때마다 동물을 향한 의료진들의 마음이 진심임을 느낀다. 살살 달래며 "불편하지? 빨리 끝낼게"라고 말을 건네주는 원장님의 진심을 은이도 아는지 병원에선 착한 아이가 된다.
반려인의 불안을 다스려주는 곳
반려인들이 느끼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반려동물이 아플 때 이를 알아차려 줘야 한다는 점일 테다.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반려동물의 병을 발견해내는 책임은 오롯이 반려인에게 있다.
이에 반려인들은 반려동물의 몸에 작은 변화만 생겨도 쉽게 불안해지고 죄책감을 갖는다. 반려인들의 이런 마음은 종종 동물병원들이 과잉검사나 과잉진료를 권하는 빌미가 되곤 한다. 나는 좋은 동물병원이라면 이럴 때 보호자의 불안을 이용하는 대신, 그 불안을 다스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은이는 만 9살이 되면서 몸에 검은 반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눈 주변에 검은 점이 생겼는데 처음 이 점을 발견했을 때 나는 '흑색종'이라는 병이 떠올랐다. 인터넷에 '흑색종'이라고 검색을 하니 무서운 설명들만 있었고, 나는 너무너무 불안했다. 여행 중 이 점을 발견했는데 도무지 여행을 즐길 수가 없었다. 빨리 진료를 받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곧바로 동물병원에 갔다. 원장님께 그동안 얼마나 불안했는지를 털어놓았다. 원장님은 은이의 눈 주변을 꼼꼼히 관찰했다. 그러더니 흑색종의 사진들을 보여주시면서 은이의 검은 반점은 단순 색소침착일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하셨다.
나는 그래도 반신반의하며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세침검사'나 '조직검사'가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다. 대체로 이쯤되면 보호자의 불안감소를 위해서라도 검사를 시행하는 동물병원이 많을 테다. 하지만 원장님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점일 확률이 훨씬 큰데 아이 고생시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지켜보세요. 저도 오실 때마다 관찰할게요. 저희 집 아이들도 나이 들어가면서 저런 점이 많이 생겼어요."
원장님의 반려견들도 점이 있다는 말에 나는 안심이 됐고, 은이의 스트레스까지 배려해주는 모습에 더욱 믿음이 갔다. 처음 점을 발견하고 9개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원장님께 점의 상태를 봐달라고 한다. 내가 똑같은 질문을 계속해도 원장님은 전혀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나를 다시 안심시켜 주신다. 지난달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 점인 걸요? 아이라인이 좀 굵어졌다 여기시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