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7코스법환포구
정지현
정오를 즈음해서 마주한 곳은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 가려고 한 장소인 법환포구였다. 길 위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조금은 큰 마을이다. 조용한 포구는 아니었지만 제주 바다만의 낭만과 아름다움은 고스란히 갖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들른 식당은 언덕 위에 있는 제법 손님으로 북적이는 식당이었다. 여러 가지 메뉴들이 있었지만 1인분이 가능한 식사는 낙지 비빔밥이 전부였다. 한 시간 가까이 한 걸음에 내달은 법환포구까지 온 길에 땀도 많이 흘렸고, 갈증도 난 탓에 낙지 비빔밥에 막걸리 한 잔이 간절했다.
막걸리 한 잔이 입에 담기고 조금은 달콤 쌉싸름한 맛은 어느새 내 목을 타고 들어가 시원함을 넘어서 개운함까지 주는 기분이다. 매콤한 낙지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달콤한 맛에 잠시 쉼표를 찍었다가 금세 다시 난 길 위에 섰다.
올레를 걷다 보면 가끔 계절의 흐름을 잊을 때가 많다.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한 기후 때문이기도 하지만 곳곳에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 때문에 늦가을에 와서도 봄인지 모를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꽃들 때문에 길을 걷는 내내 더 행복하고, 심심하지가 않다. 길 위를 걷다가 고개를 내민 제주의 민낯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한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선 길에서 7코스가 가장 사랑받는 이유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길은 바로 수봉로였고, 이국적이고 자연 그대로의 길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길이라 걷는 내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렇게 수봉로를 경유해 지나다 보면 깎아지른 절벽을 절경에 품은 돔베낭길이 나왔다.
길을 걷다 잠시 절경을 정면에 품은 카페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다시 10월 제주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며, 땀을 식혔다. 그늘 아래 시원한 커피 한잔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달아올랐던 몸은 어느새 조금씩 식어갔고, 정면에 보이는 절경 너머에 곧 펼쳐질 외돌개의 풍경을 볼 생각에 잠시 늦췄던 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걷는 걸음마다 시선은 바다 쪽을 향할 수밖에 없었고, 머리 높이 솟아있는 우거진 나무숲 덕에 한낮의 더위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앞으로 나갈 때마다 바뀌는 해안선의 풍경이 익숙해질 때쯤 바다 한복판에 우뚝 선 '외돌개'가 나오고 그 웅장함과 경이로움에 자연스레 턱이 벌어지고, 탄성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