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레기책>
오도스
책 <쓰레기책>의 7장 '쓰레기 재앙이 온다'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한다.
'수많은 데이터가 인류의 파국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 변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천천히 하나하나씩 바꿔나가자고 하는 것은 너무 나태한 상황인식입니다. 지금 당장 개입하고 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문명의 발달은 사람의 지성으로 지구를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이야 사람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인류 또한 생태계의 일원일 뿐이라는 인식을 교육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어쨌든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이동학은 사람보다 우위인 것이 있다고 말한다. 플라스틱이다. 쓰레기가 되는 순간 처치 곤란이지만 인류는 플라스틱의 생산을 멈추지 못한다. 그리하여 플라스틱은 지구 곳곳에서 영토를 넓혀가며 생태계는 물론 기후변화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와 자본주의 관계
뉴스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쓰레기 섬'이라는 표현을 들어봤을 것이다. 태평양 한가운데엔 프랑스 면적의 세 배에 달하는 플라스틱 밀집 존이 존재한다.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해류는 쓰레기를 한 곳에 집결시켰다.
해류는 바다 쓰레기의 주인을 모호하게 만든다. 처음 그 쓰레기를 버린 곳일까, 아니면 쓰레기가 멈춘 곳일까. 당연히 모두 협력하여 쓰레기를 없애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쓰레기를 치우는 데는 돈이 든다. 즉 할 수만 있다면 남이 나서서 치워주길 바라는 게 모든 나라의 솔직한 심정이다.
언뜻 생각하면 재정 상황이 넉넉한 선진국이 솔선수범하여 쓰레기 처리에 앞장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2018년 이전까지 중국은 전 세계로부터 무려 56% 이상의 쓰레기를 수입해왔다. 중국은 이것들을 전기나 열에너지를 만드는 연료로 쓰거나 재활용 재료로 재탄생시켰다.
그러나 30% 이상에 달하는 유해 폐기물이 재활용 플라스틱과 섞여 들어왔고, 그 양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중국은 쓰레기 수입을 금지했다. 당장 본국의 쓰레기를 처리할 방안을 구해야 했던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중국의 조치에 혼란을 겪는 건 당연했다.
유럽과 북미 지역 등지에서 발생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각종 유해 폐기물과 함께 컨테이너에 실려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다가 개발도상국인 동남아시아로 향했다. 한국이라고 떳떳하지 않다. 필리핀 환경단체는 지난 2019년 4월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발 컨테이너에 대량의 유해 폐기물이 있다는 것을 고발했고, 한국은 이를 평택항으로 되가져와야 했다.
또한 같은 해 5월,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닐라항에 선적되어 있는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캐나다가 하루빨리 저 쓰레기 컨테이너를 가져가지 않으면 캐나다 앞바다에 부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처럼 쓰레기 처리 과정은 자본주의의 계급화를 지독히도 닮았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의 국민들이 만들어낸 쓰레기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건 언제나 가난한 국가의 국민들이다. 저자는 '어찌 됐건 자국에서 쓰레기 처리 비용을 비싸게 주느니, 개발도상국의 업자를 구슬려 쓰레기 컨테이너를 넘기는 편이 훨씬 저렴하다'고 설명한다.
애초 플라스틱 쓰레기와 자본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자본주의는 소비 없이 유지될 수 없다. 이미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물건임에도 회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제품이 소비되어야 한다. 결국 회사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소비는 다시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버려진 물건들(과잉 생산된 제품들)은 쓰레기가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쓰레기 배출양이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는 고효율을 원칙으로 삼아 돌아가는 곳이자 자본주의가 번식하는 공간이다. 도시 안에서는 편의를 위해 잠재적인 쓰레기가 상품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된다. 인류는 경제 발전의 미명 아래 쓰레기 생산을 자행하고 있다.
우리의 적은 쓰레기가 아니다
그깟 쓰레기 어떻게든 없애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특히 플라스틱은 분해되는 물질이 아니다. 500년 뒤에는 분해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추정일 뿐이다. 500년 동안 플라스틱을 지켜보며 분해를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령 분해가 가능하다 할지라도 쓰레기를 배출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가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에 따르면, 케냐는 2017년 10월부터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했다. 르완다에서는 국경에서 세관원들이 비닐봉지를 갖고 있는지 검사하고 압수한다. 코펜하겐 재활용 센터는 상업폐기물을 유료화하거나 재사용 무료 나눔 마켓 등 다양한 방안을 운영하며 87% 이상의 재활용률을 달성했다.
독일은 중대형 마트마다 플라스틱과 빈 병을 받고 보증금을 환불해주는 기계를 배치하여 재활용품을 반납하면 돈을 받는 판트 제도를 운영 중이다. 중국 산둥성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40억 마리의 바퀴벌레에게 최고급 숙식을 제공한다. 바퀴벌레가 깐 알들이나 죽은 바퀴벌레는 훌륭한 퇴비로 활용한다. 우리나라는 2022년까지 일회용품 사용량을 35% 이상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세계적 움직임에 비하면 비교적 긴박함이 덜하다.
문명의 편리를 조금이라도 누린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편의점에서 시원한 페트 음료를 한 번이라도 사 먹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쓰레기 줄이기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쓰레기가 아니다. 편리함이다.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하다 보면 불편함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 하지만 아무리 불편함이 커봤자 그것으로 미래를 지킬 수 있다면 비교적 싼 값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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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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