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비우기를 소재로 한 일본 드라마 <버려요, 아다치 씨>
도쿄테레비 화면 캡처
그날 밤부터 그녀의 꿈에 의인화된 물건이 찾아와 말한다. "날 버려요, 아다치 씨."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 DVD는 한 번도 보지 않아 슬프니 버려달라고, 서점 비닐봉지는 재질이 고급이라 오히려 1년 넘게 구석에 처박혀만 있어 괴로우니 제발 버려달라고 부탁한다. 매회 첫 핸드폰, 선물 받은 벽시계, 같은 책 2권 등 다양한 물건이 그녀에게 찾아온다.
오늘 밤 내 꿈에도 우리 집 물건이 찾아와 "제발 날 버려요, 윤정 씨"라고 한다면, 무엇일지 집안을 둘러보았다. 몇 달째 고장 난 채로 세탁기 위에 있는 가스 의류 건조기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갑자기 작동하지 않아 수리 기사를 불렀는데, 20년 가까이 된 제품이라 부품이 없다고 한다. 보통 새 전자제품을 설치하면서 헌 제품은 수거해주니 그때 버려야지 생각했다. 구매를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의류 건조기는 어느새 비닐봉지 수납함이 되었다.
"내 배 속에 옷이 아닌 비닐봉지 때문에 토할 것 같아요. 날 버려요, 윤정 씨." 가스회사에 전화를 걸어 가스를 끊고, 대형 폐기물 신청을 했다. 안녕! 신생아 내복부터 공주 원피스를 지나 중고등학교 교복 와이셔츠까지 네가 세탁물을 잘 말려준 덕분에 수월하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어. 그동안 수고했어!
욕실 수납장에 비누 하나가 나를 부른다. "저는 여기 온 지 2년이 넘었어요. 날 버려요, 윤정 씨." 겉 포장지에 '샴푸'라고 적혀 있다. 생일 선물로 받은 비누 형태의 고체 샴푸인데, 왠지 거품도 잘 나지 않고 머릿결도 뻣뻣해질 것 같아 쓰지 않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화학성분이 거의 없다. 요즘 두피가 가려웠는데, 일단 써보자.
기존 샴푸와 다르지 않게 거품도 잘 나고, 감은 뒤 머릿결도 부드러웠다. 두피도 진정된 느낌이다. 나는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기 위해 바디워시를 비누로 쓰고 있었는데, 샴푸 비누 역시 일상생활에서 쓰레기 발생을 줄이자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에 동참할 수 있어 좋다. 샴푸 비누야, 말을 걸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