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며 '베트남 호박'을 한 통 주었다. 받고 보니, 우리네 '동아'였다. 동아는 '동과'라고도 한다.
박진희
올가을, 지인으로부터 직접 농사지은 베트남 호박이라며 흔치 않은 식재료를 건네 받은 일이 있다. 베트남 호박이라고 할 때는 '그게 뭐지?' 싶었는데, 막상 받고 보니 '동아'라고 부르기도 하는 우리네 '동과(冬瓜)'였다.
시장에서 보기만 했지 사 본 적은 없어서 고맙게 받긴 했지만,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다 보니 손댈 엄두를 못 내고 한 달 넘게 베란다에서 묵히게 됐다. 어느날, 방치해 뒀어도 상하지 않고 멀쩡한 동과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런 동과가 하도 기특해서 "내 어떻게든 너의 진가를 알아내 줄게" 약속하듯 팔을 걷어붙이게 됐다.
처음에는 갈치조림에 동과를 넣어 봤다. 동과는 어른들도 들기 힘들 만큼 크고, 무게 또한 6~8kg 나간다. 게다가 가시 박힌 겉껍질은 단단하기까지 하여 일반 주방 칼로는 어림도 없어 감자칼로 살살 달래가며 껍질을 먼저 벗겨냈다. 그 안쪽은 오이나 호박 같겠거니 여겼는데, 역시나 박과 식물이다 보니 단단한 게 꼭 덜 여문 멜론 같다.
두툼하게 자른 동과를 냄비 바닥에 깔고, 갈치와 양념장을 켜켜이 넣어가며 준비를 마쳤다. 양념 잘 밴 고등어조림의 무를 기대하며 잘 익기만을 고대했다. 그러나 완성된 갈치조림은.... 아무리 좋게 봐 주려고 해도 국물은 물론이고 동과 자체도 평가라는 게 무색할 지경이었다. 한 마디로 실패였다.
다음으로 도전한 건 동과 생채다. SNS 정보대로라면 무처럼 생각하면 되니, 생채야말로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조리법이다. 그런데 이건 또 뭔 일인지... 시원하고 달콤한 채즙과 아삭아삭한 식감을 기대했건만, 공든 탑이 무너져 버렸다. 혹시 몰라 많이 만들지 않은 걸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두 번의 실패를 겪고 결국은 동과를 떠넘긴 지인에게 조리법을 묻게 됐다. 한참이 지나도 잘 먹었단 답례가 안 들리니,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단다. 궁금증이 풀린 지인은 "썰어서 살짝 말리면 더 좋은데, 그냥 생과도 괜찮으니 납작납작 썰어서 들기름 넣고 볶아라"라고 알려준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먹어 본 지인에게 물어보길 정말 잘했다. 지인의 말대로 조리하니, 더도 덜도 아니고 적당히 익혔을 때의 식감과 호박 맛이 만족스럽게 입안에 퍼졌다.
소화성이 좋은 동과는 색다른 요리로 동과선이나 동아 정과, 동과석박지 등이 있단다. 김치로 담그기도 한다는데, 동과 생채를 담가 본 경험상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내년에도 동과를 얻게 된다면 수박김치를 벤치마킹하여 물김치 쪽으로 도전해 볼까 생각 중이다.
알밤, 깍두기로 만들어 바로 먹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