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냥꾼에 희생된 또랑이
김석봉
굳은 표정의 아들이 또랑이 묻힌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또랑이가 왜?"
"어제 그 총소리 있잖아. 총에 맞은 거 같아."
"어쩌다가 총에 맞아. 어디서."
"저기 밭두렁에 그대로 주저앉은 채 죽어 있는데 몸에 총알이 관통했더라고"
발을 동동거리는 아들을 바라보니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자꾸 출몰하는 불법 사냥꾼
"꽝!"
지난해 이맘때였다. 아랫집 사랑방에 이웃과 함께 모여 노는데 총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다. 마치 담 밖에서 쏘는 듯했다.
나는 헐레벌떡 밖으로 나와 담 밖을 내다보았다. 개울 건너에 트럭이 서 있고, 누군가가 내려 덤불 속으로 걸어들어가더니 무언가를 손에 들고 나왔다. 꿩인 듯했다. 집에서 백 미터 될까 말까한 거리였다.
그런 광경을 보자 속이 다 상했다.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관은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더니 현장으로 나오겠다고 했다. 꿩을 실은 트럭은 천천히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을과 이리 가까운 곳에서 총질을 해도 되는 겁니까."
한참을 기다린 끝에 도착한 경찰관에게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질렀다.
"거 참. 총기 반출을 할 때마다 주의를 주는데 어느 놈이 이러나? 강력하게 주의를 줄 테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안 생길 겁니다."
"주의를 줘서 되나요. 법을 어겼으면 처벌을 해야지."
"이게 뭐 처벌 대상도 아니고. 조사를 해 봐서 주의 주고 알려드릴게요."
경찰관은 그런 말을 남기고 돌아가 버렸다.
"꽝! 꽝! 꽝!"
몇 년 전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어둠이 짙어진 뒤 밖으로 나왔는데 건너편 언덕바지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추수가 끝나 군청에서 운영하는 유해조수포획단도 해체되었을 거고, 우리 마을이 수렵허가구역도 아니어서 야간에 총소리가 날 일이 없었다. 게다가 일몰 이후엔 총기를 반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분명 불법 사냥꾼이었을 거였다.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던 경찰관은 곧 현장으로 오겠다고 했다. '불법 사냥꾼 잘못 건드렸다간 총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던 나는 어두운 길목에서 홀로 기다리기가 두려웠다. 집으로 들어와 마당에서 울타리 너머로 사냥꾼의 불빛을 살피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꾼은 서치라이트를 끄고 급히 마을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건너편 언덕바지는 다시 어둠과 정적만 남았다. 그때였다. 마을 입구 쪽에서 경광등을 요란하게 번쩍이며 경찰차가 마을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전화한 게 언젠데 이제 오면 어떡합니까."
유유히 사라진 사냥꾼을 생각하니 억울해서 볼멘소리를 냈다. 늦게 도착한 경찰관이 밉고 한심해서 분하기까지 했다. 경찰관이 돌아가고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자리에서 야생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때 앞에 앉은 지인이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이 생각났다. '경찰관과 사냥꾼은 밤이면 고라니 고기 구워 함께 먹는다.' 내가 신고를 하기 무섭게 사냥을 즐기던 사냥꾼은 황급히 마을을 빠져나가고, 경찰관은 늑장으로 출동해 하나마나한 소리나 늘어놓고.
"사격연습을 한 거네"
"이거 이대로 덮어둘 일은 아니지. 또랑이 죽은 자리가 어디야?"
내 단호한 목소리에 아들은 눈을 번쩍 떴다. 일이 커지고 복잡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들이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그래. 그렇다고 집과 이리 가까운 곳에서 총질을 해?"
아들이 앞장서고 밭두렁을 따라가니 피가 흥건히 고인 자리가 있었다. 밭두렁 끝 양지바른 자리였다. 또랑이는 마른 검불에 엎드려 졸았을 거였다.
"봐라. 저쪽 밭 입구 쪽 길에 차를 세워두고 쏜 거야. 그렇겠지? 이 앞은 밭두렁이 높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든. 그러니까 저쪽에서 쏜 거지."
"그러면 총구가 저기로 향했다는 건데 우리 또랑이 맞지 않았으면 카페로 총알이 날아들었겠네."
"그렇지. 마을방향으로 총을 쏜 거야."
"그러면 왜 고양이에게 총을 쐈을까?"
"또랑이가 삼색이잖아. 알록달록하니 이게 오소리나 너구리쯤으로 여겼을 수도 있어. 또랑이 몸집이 워낙 크잖아."
아들과 나는 어느새 수사관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밭 입구에서 여기까지 이십 미터밖에 안 되는데 그걸 구별하지 못했을까?"
"그러네. 너무 가깝네. 그러면 고양인 줄 알면서 총질을 했다는 얘긴데."
나는 밭으로 들어온 또 다른 발자국이 있나 살펴보았다. 밭 입구 쪽 길에서 밭으로 들어와 밭이랑이나 밭두렁을 따라 난 발자국은 찾을 수 없었다. 총을 쏘고 밭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셈이다. 오소리로 오인했다면 밭으로 들어와 확인했을 것이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여서 발자국이 또렷이 남을 거였다.
"야. 이것 봐라. 이 놈이 아주 사격연습을 한 거네. 사격연습을 한 거야."
"우리 또랑이를 앞에 놓고 사격연습을 한 거라고?"
"그놈이 고양인 줄 뻔히 알면서 쏜 거야. 그러니까 사냥감을 확인도 하지 않았지."
아들이 전화기를 꺼냈다. 내가 먼저 파출소로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