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하는 날, 의사는 중간점검 차원의 CT촬영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elements.envato
입원 다음 날 아침 회진에 의사는 오지 않았다고 했다. 급한 수술이 잡혀 있어 오지 않았고 저녁 회진 시간에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심정을 의사는 생각했을까. 회진에서 의사는 검사 결과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듯이 말했다.
"네. 결과 좋네요. 계속 열심히 치료받으시고..."
뛸 듯이 기쁜 소식이었지만 의사는 5초 정도 눈을 맞추고 지나는 길에 건네는 안부처럼 덤덤하게 말했다고 했다. 길게 말하지 않는 담당 의사의 말버릇은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서운하거나 아쉬운 마음보다는 짧고 감동 없는 말이 오히려 엄청나게 기쁜 소식으로 들렸다.
가족들에게 상세히 전하고 싶어 남편은 다시 간호사에게 상황을 자세히 물었고, 환자를 가까이에서 살피는 간호사는 정말 좋은 소식이라며 길게 설명을 해 주었다고 했다. 폐도 깨끗하고 장도 깨끗하다고.
항암의 회차가 지나며 먹는 약의 종류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간을 보호하는 약, 위에 통증이 있어서 위를 보호하는 약도 처방받았다. 구역과 구토를 예방하는 약, 혈압약 등 기존에 먹던 약까지. 매 끼니마다 챙겨야 할 약들은 점점 많아졌고 항암의 후유증은 심해지고 있다.
항암제 투약과 먹는 약으로 인해 위와 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간수치가 좋지 않고, 속 쓰림과 위통, 예민한 대장 증상과 손발톱은 죽어가고 있고 혀의 감각은 점점 더 기능을 잃고 있다. 찌릿하고 저릿한 증상은 몸의 이곳저곳에서 나타난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근육통과 식욕부진, 말초신경의 감각 장애와 구토 및 오한 등의 증상까지.
환자가 아니라서 체감은 못하지만 정상적인 세포도 죽인다는 항암제 투약은 온갖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입은 쓰고 얼얼하고 우주인이 된 듯 찌릿하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입에서 가리는 음식과 몸에서 거부하는 음식을 빼고 나면 사실상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따끈한 국물이나 그나마 잘 먹던 국수도 외면했다. 저녁은 아예 챙기지 말라는 말로 확실히 의사를 표명했다. 혹시 당기는 음식이 있을까 싶어 몇 가지 종류를 얘기하면 그것에도 역한 반응이 올라온다고 했다. 집 안의 음식 냄새에 예민했다. 본인이 먹는 음식의 냄새도 역겹다고 했으나 매일 걱정하고 챙기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억지로 먹어주는 것은 말은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몇 달을 정신없이 살다 보니 가족 모두 여유라는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대로 나와 아이들은 또 나름대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아 멍을 때리니 눈에 들어오는 글자가 있었다.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누군가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에 써야 한다며 묻고 있었다. 문득 지금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는 뭘까 생각했다.
다시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