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가, 잡초> 책표지.
더숲
<전략가, 잡초>(더 숲 펴냄)는 우리 집 마당 제비꽃처럼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풀 혹은 잡초들의 생존을 위한 다양하며 치밀한 전략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잡초는 변화하기 쉽기 때문에 변이가 자주 일어난다. 예를 들어 토끼풀은 청산이라는 독물질을 만드는 유형과 만들지 않는 유형이 있다. 유럽 북쪽 지방에는 독물질을 만들지 않는 유형이 분포되어 있지만 남쪽 지방으로 가면 독물질을 만드는 유형이 분포되어 있다. 남쪽 지방에는 토끼풀을 먹어 치우는 달팽이가 있기 때문에 토끼풀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독물질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추운 북쪽 지방에는 해충 달팽이가 없으니 토끼풀이 독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추운 지역으로 갈수록 눈바람에 견디기 위해 키가 작아지거나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잎이 작아진 풀이 있다. 또 추운 지역으로 가면 갈수록 꽃이 피거나 이삭이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는 풀도 있다. 추운 지역에서는 여름이 짧으므로 꽃을 빨리 피워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략가, 잡초> 73쪽에서
혈족 간의 결혼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들이 많다. 기형 발생 등 유전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동성동본 결혼에 일정의 제한을 두고 있다. 책에서 읽은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식물들도 같은 꽃에 있는 암술과 수술이 수정하면(제꽃가루받이) 불리하다는 것. 그래서 그를 막으려는 다양한 전략을 펼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꽃들은 암술이 수술보다 길다. 수술이 더 길면 수술에서 꽃가루가 떨어져 암술에 붙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암술과 수술 길이를 달리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보다 믿을만한 장치를 한다는 것이다.
암술이 성숙하기 전에 수술을 먼저 성숙시킴으로써 암술이 성숙할 즈음에는 수술이 꽃가루를 만들어 내지 못하게 하거나, 반대로 암술이 성숙을 마친 후 수술을 성숙하게 해 꽃가루를 만들어 내도록 시기를 달리하거나, 앵초처럼 같은 종류의 꽃인데도 장주화(암술이 길고 수술이 짧은)와 단주화(암술이 짧고 수술이 긴)로 피게 함으로써 가능성을 낮추거나 등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한 꽃의 암술과 수술이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같은 꽃 수술에 있는 꽃가루가 암술로 옮겨붙는 일이 일어나면 수술이 화학물질 등으로 꽃가루를 공격하고 꽃가루가 발아해서 꽃가루관을 늘리거나 수정을 막는다(112~113쪽)'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보거나 지나치는 그 순간에도 꽃 한 송이 혹은 풀 한 포기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