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무라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지은이).
문학동네
소설의 주인공 하지 무라트는 실존했던 인물로, 19세기 러시아 제국에 저항한 캅카스 민족의 이슬람 군인이었다. 그는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러시아 군인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장군이었다.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 러시아의 산맥지대인 캅카스 지역에서 군대 생활을 하던 중 상대 진영의 명장 하지 무라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지 무라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는 결심을 한다. 노년에 이르러서야 그 결실이 나오게 된 것이다.
러시아와의 투쟁에서 공을 세워 그 능력과 용맹함을 두루 인정받았던 하지 무라트는 곧 이슬람 통치자 샤밀의 견제와 감시를 받는다. 이후 샤밀의 통제는 날로 심해지고, 이런 샤밀의 위선과 전횡에 견디다 못한 하지 무라트는 결국 부하들을 이끌고 캅카스를 탈출하여 러시아군에 투항하게 된다.
러시아 진영으로 넘어간 하지 무라트는 곧바로 장군 보론초프를 찾아가 충성을 맹세하고 그와 함께 샤밀의 군대를 무너뜨릴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샤밀의 군대를 공격하리라는 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하지 무라트는 본국에 두고 온 가족들이 눈에 밟혀 걱정과 슬픔의 나날을 보낸다. 결국 하지 무라트는 가족들을 구출해 내기 위한 목숨을 건 탈주를 결심하고 이를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어느 날 산책에 나섰던 하지 무라트는 러시아군의 감시를 피해 전속력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그 뒤를 바짝 쫓아오는 러시아군에 의해 추격을 당하고 이내 그들의 포위망 속에 갇히게 된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달아날 곳이 없었던 하지 무라트였지만 적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기개와 용맹함은 대단했다.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담대한 그의 모습을 본 러시아 군인들은 하나같이 그를 훌륭한 영웅이라고 높이 추켜세운다. 이렇듯 톨스토이는 한 인간의 굽힐 줄 모르는 강인한 정신력을 하지 무라트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보여주는 이야기가 여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도 꼿꼿하게 고개를 드는 엉겅퀴와 같은 한 인간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그런 강인한 모습 이면에 감춰진 인간 본연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적진에 투항해서 가족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흔들리는 하지 무라트의 모습은 전쟁터에서 수천 명의 군인을 이끌고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던 영웅이 아닌 그저 한낱 범부(凡夫)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소설에서 하지 무라트가 죽는 장면 또한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총격전이 벌어지자 총알 한 발이 하지 무라트의 옆구리에 명중했고, 그는 그대로 주저앉는다. 이어서 러시아군이 쇠망치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자 하지 무라트는 즉사한다.
그러자 적들은 하지 무라트의 몸을 짓밟고 목을 자른 뒤 발로 굴린다. 그리고 "초연이 자욱한 덤불 속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승리를 자축한다." 이렇게 전쟁터에서 명장의 목숨은 한순간의 이슬처럼 사그라든다.
톨스토이가 보여주는 이런 하지 무라트의 대비되는 모습들은,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성찰적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 녹아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따라오듯이, 절망과 희망은 공존할 수 있으며, 슬픔과 즐거움은 함께 할 수 있다는 즉 인간과 그 삶은 하나의 의미로만 설명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진실이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톨스토이가 관찰한 인간들의 다양한 면면(面面)들일 것이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 몰랐다."
소설가 서머싯 몸이 한 말이다. 우리 또한 소설의 주인공 하지 무라트처럼 강하면서도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수 있고, 선하면서 악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할 수 있고, 선행을 베풀면서도 욕망하고 질투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렇게 인간은 한없이 복잡하고, 미묘하면서도 기이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끝내 알 수 없는 우주와도 같다. 인간을 하나의 작은 우주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인간은 인간을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다. 바로 이것이 톨스토이가 소설 <하지 무라트>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과 삶에 대한 하나의 진실이 아닐까.
하지 무라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박형규 (옮긴이),
문학동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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