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저녁,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세종호텔 노동자들
연정
지난 7일 저녁, 서울 명동역 10번 출구 세종호텔 앞.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일 평균 5천 명을 넘어섰지만, 퇴근을 하거나 쇼핑이나 저녁 약속을 위해 나온 시민들로 북적인다.
올해로 세종호텔(대표이사 오세인)에서 근무한 지 21년이 된 최영석(가명)씨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슷한 일상을 보냈다. 운전을 잘하고 좋아했던 영석씨는 가족여행 두 달 전에 숙소를 예약하고, 숙소 주변 맛집을 찾아보며 행복감에 미소 짓던 소박한 삶을 살던 노동자다.
10년 동안 임금동결인 박봉에 과중한 업무였지만, 오래된 정겨운 동료들과 영석씨의 노력을 알아주는 고객들이 있는 세종호텔이 영석씨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일터다. 한 달 전 그 소중한 일터에서 해고 예고 통보를 받은 영석씨는 그 뒤로 이 호텔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와 영업정상화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있다.
"관광영어 공부를 했는데, 처음에는 다른 일을 했어요. 젊을 때는 3교대 근무하고 주말에 못 쉬는 게 싫어서 호텔에 들어올 생각을 안 했거든요. 그러다가 하던 일이 적성에 안 맞아서 호텔에 지원을 하고 임시직으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직원이 3백 명 가까이 되었을 거예요. 손님들도 많고 호텔이 북적북적했죠."
열심히 일한 덕분에 3년 만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레스토랑과 연회장에서 서빙과 고객 응대 업무를 하는 웨이터로 근무했다. 그렇게 10년을 일하다가 객실 관리팀으로 옮겨와서 객실 시설과 안전관리, 청소 업무 배정, 손님 컴플레인 처리 등의 업무를 했다.
"손님 응대 잘해서 '고맙다' '잘한다'는 인사말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 있어요. 코로나 전에는 객실 손님들의 거의 70% 이상이 일본 손님들이었어요. 일본 손님들은 웬만큼 불편하지 않는 한 한 번 이용한 호텔을 계속 이용하거든요. 자주 오는 손님들한테 알아서 잘해드리고 하니까 넥타이도 몇 번 받아보고, 과자는 엄청 많이 받았어요."
단골손님들의 취향을 파악해서 이용 중에 불편이 없도록 서비스하는 것은 오래 근무한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큰 장점이다. 손님들 역시 영석씨를 기억하고 일본에 돌아갔다가 다시 오는 길에 일부러 선물을 챙겨 와서 건네기도 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버린 지금, 그때가 참 그립다.
정말 노예처럼 일했어요
"월급이 10년 전 월급 그대로예요. 월급이 깎인 분들도 많았어요. 300만 원 받던 사람이 최근까지도 200만 원도 안 되게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정규직 하나 라는 이유로 버텼어요. 4대 보험도 되고, 퇴직금도 쌓이고, 연차도 쓸 수 있으니까 버티고 버티고 했는데..."
2011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이후, 사측 주도로 설립된 한국노총 소속 세종연합노조가 교섭대표 노조가 되었다. 세종연합노조는 기존에 민주노총 소속 세종호텔노조가 체결했던 단체협약 '비정규직 1년 후 정규직 전환' 조항과 '고용안정협약'을 무효화했다.
그리고 2012년에서 2016년에 걸쳐, 성과연봉제 대상자를 전 직원으로 확대하는 임단협을 체결한다. 법정 제수당을 포괄하는 포괄임금제가 시행되고,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강요받았다. 20년 이상 일해 온 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회사에 바른 말하고 민주노조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임금이 반 토막 났다.
그사이 세종호텔은 주차장 관리와 객실 청소, 시설관리 업무를 모두 외주화 했다. 세종호텔노조의 투쟁으로 최근까지도 정규직이 일하던 객실 청소와 시설관리 업무도 지금은 모두 용역업체 노동자가 하고 있다. 이제 남은 정규직 노동자는 40명, 12명 마저 해고가 되면 20여 명이 333개 객실을 가진 세종호텔의 업무를 다 해야 한다. 현재, 손님들이 많이 와도 인력 부족으로 객실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판매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지부장(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소속) 은 "일부 방만 정비를 하고, 나머지 방들은 말 그대로 한 번씩 가서 물이끼 차지 말라고 변기 물만 내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나중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했다.
"인원을 너무 안 뽑아서 정말 노예처럼 일했어요. 3명 근무할 건데, 두 명 시키잖아요. 그러면 회사는 '한 명도 할 수 있겠는데' 거의 그런 식이었어요. 인원이 너무 타이트했어요. 솔직히 인원 2~3명 늘어난다고 해서 회사가 휘청거리는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인원을 뽑아서 하자는 건데... 그래도 회사가 어렵다는데 '내가 참자' 했어요. 회사에서 아무리 부당한 지시를 내려도 저는 어지간하면 그거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항상 지시에 묵묵하게 따른다고 해야 되나."
코로나19로 호텔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코로나를 핑계로 호텔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노동자들을 정부지원도 마다하면서 정리해고하는 세종호텔이 안타깝기도 하고 화도 난다.
더군다나 대양학원(이사장 최세모)은 충남 당진 목장(공시지가 800억 원 이상)을 포함하여 3천억 원에 가까운 부동산·건물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대양학원 이사회도 당진 목장 등 수익성이 낮은 부동산을 매각하여 수익성 사업에 재투자한다는 결정(2021년 4월)이 났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오로지 노동자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