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으면 안 돼요, 시 쓰기도 여기에 해요"

[인터뷰] 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중증장애 1급 '시인' 이지숙씨

등록 2021.12.20 08:24수정 2021.12.20 08:24
0
원고료로 응원

중증장애인 이지숙씨 . ⓒ 최미향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맨날 눈물짓는 시간을 보냈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리움이 몰려올 때면 시를 쓰게 됐어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은 스스로 독립해서 활동지원사를 쓰면서 혼자 살고 있어요."

지난 16일 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중증장애 1급 이지숙씨를 만났다. 그녀는 충청남도남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주최한 제4회 장애인 문화예술 작품 공모전 '끼'의 시부분에 응모하여 성인부 최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교통사고로 중증장애 1급을 받은 그녀는 서울에서 엄마의 고향 서산으로 내려와 정착하게 됐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숙씨의 엄마는 그만 5년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지숙씨는 홀로 남게 됐다.

"제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떠나버리는 바람에 너무 힘들었어요. 어떻게 할지 앞이 깜깜했어요."

지숙씨는 시간이 흐른 후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이렇게 편지글을 썼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했던/한 날 한 시 같이 죽자 약속했던/당신은 어디 갔나요?
당신 홀로 먼 길 보내 드리고/당신 외롭게 해서/정말 미안해요
이 못난이 잘 살 테니/부디 걱정하지 마시고/거기서 잘 지켜보아 주세요

  

이지숙 씨가 자신의 작품앞에서 . ⓒ 최미향

 
세상에는 장애인과 예비장애인이 있을 뿐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김경수 센터장은 "세상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는 장애인과 예비장애인이 있을 뿐이다. 생로병사라고 누구든지 결국에는 다 장애의 길로 가게 마련"이라고 했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지숙씨는 일찍 장애를 겪으면서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보치아와 탁구를 배워 현재 보치아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비록 한쪽 팔이지만 그녀의 팔은 1당100을 해내는 천하무적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기성찰을 하며 자신을 다독이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녀의 시 '기도'에서 그녀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세상 환하게 비추이는 달님이여/물 위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님이여/어둠에 길 잃고 헤매이지 않게/ 나의 갈 길 환히 비추어 주소서
이 세상 뜨겁게 안아주는 태양이여/길가에 아름다이 피어있는 들꽃이여/슬픔에 잠기어 눈물로 지새우지 않게/나의 갈 길 꽃길로 인도하소서/어디에선가 홀로 서성이지 않게...

 
2년 연속 장애인 문화예술 작품 공모전 수상

그녀는 활동보조원이 머리만 감겨주면 혼자서 머리 손질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머리 스타일이 마치 미장원에서 갓 매만지고 나온 것처럼 완벽하다. 옷 입는 스타일이 워낙 세련된 지숙씨는 옷 코디는 물론, 휴대전화기로 쇼핑도 직접 한다. 물론 시 쓰기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시는 이미 SNS에서도 유명하다.

"휴대폰이 없으면 안돼요. 큰일 나요. 시 쓰기도 여기에 해요."

시 쓰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폭이 좁았어요. 그런데 계속 쓰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삶에서 나오는 얘기를 쓰게 됐어요. '아~ 이게 이거구나'라고 느껴져요. 하지만 여전히 너무 모자라요."

그녀는 2년 연속 장애인 문화예술 작품 공모전에서 수상의 기쁨을 누린 장본인이다. 그녀는 올 초 '새해 소망'이란 시에 이렇게 심경을 고백했다.

음마~음마~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칼바람에 눈꽃을 휘날리며
내가 왔노라고 내가 왔노라고

새 희망을 노래하며
지나간 응어리를 녹여주듯
온누리 구석구석을 감싸안는다

소복이 쌓인 눈길을
누구도 거닐지 아니한 그 길을

나는 한발자욱 한발자욱
올 한해의 소원 담아 새겨본다

까맣게 그을려버린 우리네 세상
반짝이는 눈꽃으로 피어나게 해달라고

 
귀를 기울여야만 몇마디 알아듣는 정도의 대화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 지숙씨. 그녀에게는 보배로운 언어가 손끝에 농축되어 있어 충분히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그녀가 가는 길이 비록 힘들지라도 늘 웃음잃지 않으며 씩씩하기를 기원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중증장애인 시인 이지숙씨 #엄마의 빈자리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보치아 선수 #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봉 천만원 올려도 일할 사람이 없어요", 산단의 그림자
  2. 2 은퇴 후 돈 걱정 없는 사람, 고작 이 정도입니다
  3. 3 구강성교 처벌하던 나라의 대반전
  4. 4 '판도라의 상자' 만지작거리는 교육부... 감당 가능한가
  5. 5 [단독] "문재인 전 대통령과 엮으려는 시도 있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