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들의 마지막 보금자리, 용인

경기 별곡 용인 5편

등록 2021.12.20 15:02수정 2021.12.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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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묘역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조광조의 묘 조광조의 묘역에는 그뿐만 아니라 그의 선대들과 후손들이 함께 묻혀진 한양조씨 공동묘역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높은 지점에 조광조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조광조 묘역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조광조의 묘조광조의 묘역에는 그뿐만 아니라 그의 선대들과 후손들이 함께 묻혀진 한양조씨 공동묘역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높은 지점에 조광조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운민

정몽주, 조광조, 체재공, 민영환 등 전부 한결 같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분들의 안식처 및 그들을 모신 사당, 서원이 전부 용인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예로부터 생거진천 사후용인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한양과의 지리적 이점은 물론 산세가 깊으면서 험하지 않은 좋은 터를 가진 덕택에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입지를 가졌다고 한다.

용인 이 씨, 연안 이 씨, 한양 조 씨, 해주 오 씨, 우봉 이 씨 등 이름난 사대부 가문들이 자리를 잡고 그들이 남긴 묘역이 남아있다. 200여 기에 이르는 사대부의 무덤들을 전부 둘러볼 순 없다. 그러나 그중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답사의 의미가 있는 곳을 몇 군데 선정했으니 함께 둘러보기로 하자.   
   
조광조 묘역 입구에 있는 조광조 신도비 조광조 묘역 입구에 있는 문정공 조광조의 신도비이다. 사림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개혁을 펼쳤던 그는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수십년 후엔 사림주도의 정국이 만들어진다.
조광조 묘역 입구에 있는 조광조 신도비조광조 묘역 입구에 있는 문정공 조광조의 신도비이다. 사림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개혁을 펼쳤던 그는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수십년 후엔 사림주도의 정국이 만들어진다.운민
 
용인 수지에서 수원 광교로 넘어가는 길 중간, 야트막한 동산에 우리가 주목하지 못한 위대한 인물의 묘가 있다. 포은대로를 지나가는 수많은 차들을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코 그곳을 쌩쌩 지나간다. 조선 중기의 개혁가이자 정치가, 학자인 조광조 선생의 묘가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조광조 선생의 묘뿐만 아니라 그의 일족인 한양 조 씨의 묘가 함께 몰려있다. 그의 증조부를 비롯해 조부, 부모, 아들의 무덤이 있는 가족 묘지인 것이다. 많은 무덤이 있기에 조광조의 무덤을 찾기 좀처럼 어려웠지만 입구에 그려진 묘 위치도를 천천히 대조해보며 능선을 사뿐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묘역 입구에는 문정공 조광조의 신도비가 당당한 자태로 우뚝 솟아 있었다. 총 높이 3미터에 달하는 신도비는 사림이 정권을 잡기 시작한 선조 때 세워졌으며 비문은 노수신이 짓고 이산해가 글씨를 썼다고 전해진다.     

예상대로 가장 높은 지점에 조광조 선생과 그의 부인의 묘가 있었고, 그 일대 동네가 훤히 보인다. 묘 앞에 서서 불꽃 같이 살다 간 그의 일생을 돌아본다. 동방사현이라 불리는 김굉필의 밑에서 수학했으며(조광조 역시 동방사현이다) 성리학 연구에 힘써 김종직 학파를 계승하는 사림의 샛별로 거듭난다.

때는 사림을 탄압했던 연산군이 쫓겨나고 반정으로 중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개혁의 요구가 점차 거세져 가던 시기였다. 조광조는 그런 시대의 분위기를 업고, 왕도정치와 유학에 입각한 개혁을 펼쳐갔다. 현량과, 소격서 폐지, 향약 보급이 그런 일환의 하나였다.

하지만 단지 공신을 견제하기 위해 조광조를 끌어 들었던 중종은 싫증이 났고, 기성 정치세력인 훈구파의 견제도 갈수록 커져만 갔다. 결국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일파는 귀양을 가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명 기묘사화의 풍파에 휩쓸리고 만다. 조광조 본인도 전라남도 능성(화순 능주)에 귀양을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사되었다.  
  
심곡서원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조광조의 묘에서 머지않은 곳에 그를 배향하는 심곡서원이 있다. 심곡서원의 가장 자랑거리는 조광조 생전에 식수했다고 전해진 500년 역사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다.
심곡서원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조광조의 묘에서 머지않은 곳에 그를 배향하는 심곡서원이 있다. 심곡서원의 가장 자랑거리는 조광조 생전에 식수했다고 전해진 500년 역사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다.운민
    
하지만 그는 사림이 승리한 선조 때 복권되었고, 문묘에 배향되기에 이르렀다. 그를 모신 서원이 묘소에서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심곡서원이라 불리는 이곳은 경기도에서 가장 위세가 당당하고, 잘 보존된 서원이라 할 수 있다.


주위가 온통 아파트 밭으로 덮여 있지만 넓은 주차장은 물론 관리 상태도 제법 신경 쓴 듯했다. 1605년 선조 시기, 임금이 직접 이름을 내리는 사액서원의 하나로 세워졌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였다. 현재 심곡서원은 조광조뿐만 아니라 그와 뜻을 함께 했던 학포 양팽손 선생도 함께 모시고 있다.      

여느 서원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담당하는 강학 공간인 강당과 휴식과 기숙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한 구역 내에 있으며 그 뒤편엔 장서각과 제향 공간이 이어진다. 다른 서원과의 차이점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자면 우선 강당과 제향 공간이 비슷한 길이로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또, 강당 내부에는 송시열, 도암 이재, 문춘공 김종수 등 당대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의 글이 이곳저곳에 걸린 것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심곡 서원의 하이라이트는 제향 공간 뒤편 너른 터이다. 조광조 선생이 식재했다고 전해지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400년 수령의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며 잠시 예전의 심곡서원을 상상해 본다. 예나 지금이나 유생들의 쉼터에서 시민의 쉼터로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민영환의 묘소에 세겨진 그의 유서 민영환은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얼마 안되서 스스로 자결한다. 그의 묘역에 위치한 비석의 한면에는 비통한 심정이 느껴진 유서가 써져 있다.
민영환의 묘소에 세겨진 그의 유서민영환은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얼마 안되서 스스로 자결한다. 그의 묘역에 위치한 비석의 한면에는 비통한 심정이 느껴진 유서가 써져 있다.운민
 
이번엔 기흥구 마북동으로 한번 가보기로 하자. 마북동, 구성동 일대는 옛 용인을 다스렸던 중심지였던 만큼 용인향교와 장욱진 가옥 등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문화재가 두루 분포하고 있다. 그 중 구성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언덕을 따라 오르다 보면 대한제국의 애국지사이자 을사늑약에 항거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민영환의 묘역이 나타난다.

비교적 깔끔하게 조성된 그의 묘역 입구에는 그의 유서가 새겨져 있는데 구불구불한 글씨체에서 그의 비통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하다. 그는 당시 최고 세도가였던 여흥 민 씨의 일원으로 도승지, 형조판서, 한성부윤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후 그는 러시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여하는 길에 여러 열강 국가들을 방문해 개화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민영환묘의 전경 용인의 마북동의 골목길 위쪽에 그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민영환묘의 전경용인의 마북동의 골목길 위쪽에 그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운민
 
실제로 독립협회 등 개화 단체를 후원했고, 민권 신장과 의회의 도입 등 정치개혁을 시도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상소를 올렸으나 헌병에 의해 가로막히고, 왕명 거역죄로 견책까지 당하게 된다. 그는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명함 앞 뒷면에 유서를 세기고 칼로 자신의 목을 베어 자결한다.

민영환의 죽음은 큰 파장을 불어 일으켰고, 조병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자결로 이어진다. 그의 시호는 충정공이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다. 묘 앞에 있는 비석의 글씨는 그의 정치적 후원을 받았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적었다고 한다. 다음 화에선 포은 정몽주와 남인의 거두 채제공의 묘역을 함께 찾아가 보기로 하자.      
덧붙이는 글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1권 (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 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경기도는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와 함께 합니다. 강연 문의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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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팟케스트 <여기저기거기>의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obs라디오<굿모닝obs>고정출연, 경기별곡 시리즈 3권, 인조이홍콩의 저자입니다.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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