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덜덜 떨면서 먹어야 제 맛.. "얼어 죽어도 포기 못해"

추울수록 생각나는 우리집 겨울철 별미 '동치미 국수'

등록 2021.12.30 06:04수정 2021.12.30 06:04
1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6일 서울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5도까지 곤두박질쳤다. 한겨울로 깊숙이 진입한 모양새다. 습관처럼 켜놓은 TV 화면에는 목도리 등으로 칭칭 감싼 차림새로 얼굴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기상 캐스터가 등장해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실감나게 전하고 있었다. 덕분에 잊고 지내온 한겨울의 느낌이 온전히 되살아나는 것 같다. 이런 날에는 움직임 자체가 무척 곤혹스럽다. 일요일인 게 천만다행이다. 


이처럼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몹시 추운 날이면 으레 따스한 국물이 곁들여진 음식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난 그 반대다. 추우면 추울수록 되레 덜덜 떨면서 먹어야 제 맛으로 다가오는 음식 하나를 떠올린다. 흔히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생각하기 십상이겠으나 이는 아니다. 촌스럽게도 난 여전히 믹스커피를 선호하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겨울철이 다가올 무렵이면 각 가정마다 김장 준비로 분주해진다.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1월 말에 담근 김장김치는 요즘 한창 맛이 좋아질 대로 좋아졌다. 제대로 익은 덕분이다. 연례 행사로 치르는 이 김장 때마다 우리집에서 빼놓지 않고 담그는 게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동치미다. 통무를 소금에 절인 뒤 잘게 썰어 심심한 국물에 곁들여 먹는 이 동치미는 누가 뭐라 해도 역시 겨울철이 제 맛이다.  
 
 동치미국수는 겨울철 별미 중 별미로 꼽힌다
동치미국수는 겨울철 별미 중 별미로 꼽힌다김봉건
 
특히 살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동치미에 말아먹는 국수는 별미 가운데 별미로 꼽힌다. 오늘 같이 추운 날, 아삭한 동치미 무와 꼬들꼬들한 국수 면발을 곁들여 한 입 베어문 뒤 시원한 국물로 목을 축이면, 몸은 비록 덜덜 떨리고 그 차가운 기운이 뇌에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어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을 사랑한다. 그 특유의 시원함과 개운함 그리고 감칠맛에 절로 탄복하게 된다. 

아쉽게도 이 동치미 국수는 한겨울 아주 짧은 시기에만 맛볼 수 있다. 귀한 음식이다. 겨울철만 되면 조건반사처럼 동치미와 동치미 국수가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내 침샘을 자극해 오는 건 이러한 연유 탓이다. 

동치미 국수가 맛이 있으려면 무엇보다 동치미를 맛있게 담가야 한다. 그리고 동치미 맛의 차이는 담그는 사람의 손맛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집 동치미는 아내의 손맛이다. 그런데 그 아내의 손맛은 내 어머니의 손맛에서 비롯됐다. 어머니의 손맛은 어머니의 어머니의 손맛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손맛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손맛이다. 

그러니까 겨울철이면 유독 생각나는 이 동치미 국수는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그 윗대의 손맛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내리 이어온 소울 푸드였던 셈이다. 누군가는 단순한 무 김치에 불과하다며 동치미를 폄하할지 모르겠으나 이 단순함 속에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전해져 온 전통의 손맛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기막힌 음식 맛에 매료된 난 겨울철만 되면 자연스럽게 이를 떠올리면서 입맛을 다시게 된 것이다.  


아내가 나를 위해 오늘 점심 메뉴도 동치미 국수로 정했다. 동치미 국수를 만드는 과정은 무척 단순하다. 국수 면발을 삶아 그릇에 담고, 동치미 국물과 작게 썬 동치미 무를 곁들이면 된다. 여기에 각자 취향에 따라 설탕 등을 얹어 잘 저어 먹으면 그만이다. 

한겨울이 아니면 결코 맛보기 어려운 소울 푸드 동치미 국수. 알고 보면 정성 가득한 이 음식은 오늘 같이 추운 날 덜덜 떨면서 먹어야 제 맛이다. 나는 '얼죽동'(얼어 죽어도 동치미국수)이다.
#동치미 #동치미국수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은퇴로 소득 줄어 고민이라면 이렇게 사는 것도 방법 은퇴로 소득 줄어 고민이라면 이렇게 사는 것도 방법
  2. 2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남자를 좋아해서, '아빠'는 한국을 떠났다
  3. 3 소 먹이의 정체... 헌옷수거함에 들어간 옷들이 왜? 소 먹이의 정체... 헌옷수거함에 들어간 옷들이 왜?
  4. 4 32살 '군포 청년'의 죽음... 대한민국이 참 부끄럽습니다 32살 '군포 청년'의 죽음... 대한민국이 참 부끄럽습니다
  5. 5 수렁에 빠진 삼성전자 구하기...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 수렁에 빠진 삼성전자 구하기...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