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먹으라고 산 건데 왜 이렇게 안 챙겨 먹어?"
고정미
얼마 전에도 별것 아닌 일로 말다툼을 했다. 뉴스를 보다가 코로나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가 너무 많이 늘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처가 너무 늦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가 한 마디 하셨다. "이제 나쁜 말은 그만~."
엄마가 내 입을 막은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건강보험료가 갑자기 올라서 내가 투덜댔더니 그때도 엄마는 그만하라고 하셨다. '내가 집에서 내 의견도 이야기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에게 항변했다.
"우리 집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살아? 엄마는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러네. 내가 싫어하는 거 알면서."
그러자 엄마가 지지 않고 말했다.
"너가 그런 이야기할 때 화를 내서 그래."
나도 부아가 나서 대꾸했다.
"화가 나면 화도 내고 그러는 거지. 내가 엄마한테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말로 푸는 건데. 그럼 앞으로 집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해야겠네."
나의 이 유치한 선언에 엄마도 질세라 대답했다.
"그래. 그럼."
그 말에 마음이 상한 나는, 진짜로 출근할 때까지 입을 닫았다.
사실 조금 떨어져서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다툼이다. 이 다툼은 그저 도화선이 된 것일 뿐, 그 전에 불편함들이 쌓여왔다.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내가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오는 날, 다 들리는 혼잣말로 "커피는 우라지게 잘 사먹네"라고 하실 때가 있다. 커피는 기호식품이니 먹는 것 가지고 핀잔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도, 엄마는 가끔씩 커피를 마시는 나에게 못마땅한 신호를 보내곤 한다.
"내가 오십 넘어서 커피 마시는 것도 엄마 눈치를 봐야 해?"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지 말기."
그렇게 몇 번이나 이야기해 봤지만 참는 듯 하시다가 또 튀어나오곤 한다. 사실 나도 엄마의 소비를 다 이해하는 건 아니다. 홈쇼핑을 보다가 엉뚱한 약에 꽂혀서 사려고 할 때나, 건강 프로그램을 보고 거기서 좋다는 영양제나 식품을 사려고 할 땐, 나도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그래도 일단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그 상품과 판매처를 검색해 본 뒤 괜찮다 싶으면 주문하고 아니면 사지 말라고 말린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엄마와 갈등을 일으키는 건, 엄마가 사놓은 걸 나에게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나는 별 필요도 못 느끼고 귀찮기도 해서 성실하게 챙겨 먹지 못하는 편인데, 그런 나를 챙겨주고 싶은 엄마의 선의는 종종 분란을 일으키곤 한다.
"너 먹으라고 산 건데 왜 이렇게 안 챙겨 먹어?"
그런 성화를 부리실 땐 억울함이 밀려온다. 나는 그걸 먹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