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 활동가들이 지난 11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위한 평등길 걷기'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선이 두 달여 남았다. 한국 사회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때인데 도무지 어떤 전망이나 기대도 품어지지 않는다. 연일 쏟아지는 거대 양당 두 후보를 향한 폭로전은 피로도만 높이고 두 후보가 내놓는 말과 정책들은 지금의 삶에 닿지를 않는다. 과연 두 후보는 이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꿈을 시민들과 함께 꾸고 있는가.
올해 시민들은 변화를 꿈꿨다.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행동했다. 차별금지법이 2007년 처음 등장한 이래 제정에 대한 요구는 계속 있어왔던 것이지만 올해는 특히 끈질긴 진전을 이뤘다. 그 힘으로 여론을 주목시켰고 차별금지법을 더는 회피할 수 없는 쟁점으로 만들었다. 무엇이 이토록 시민들을 강하게 이끌었는지 지금의 정치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여론을 의식한 듯 차별금지법을 언급하는 양당 두 후보의 발언은 여전히 너무도 시대착오적이다.
시민은 뜨거운데 후보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해 11월에 한국교회총연합을 방문해 "차별금지법 일방통행식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사회적 합의 운운했다가, 12월엔 "일부가 가진 오해 또는 곡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회에서 논의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민주연구원에서 성적 지향·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에서 제외한 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거는 방안을 선대위에 제출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차별금지법안을 3개나 발의한 당의 후보가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분명한 입장은 밝히지 않은 채 그때그때 상황을 모면할 말로 당장의 위기만 벗어나겠다는 속내가 훤히 보인다. 너무도 비겁하지 않은가.
이 후보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일부가 가진 오해와 곡해를 국민들의 집단지성과 시민의식을 통해 합리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미 10만국민동의청원과 14년동안 꾸준하게 요구하며 집단지성과 시민의식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 집단지성과 시민의식을 14년동안 외면하며 차별과 혐오를 양산해온 것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었다. 그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그 책임을 분명하게 져야 하고 현재 당의 중심에 선 이 후보는 앞장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문제가 많이 생긴다"거나, "선진국도 포괄적 기준으로 차별을 방지하지 않는다"며 "법을 강제하기엔 논란의 여지가 많아 더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말하는 자유는 누구의 자유인가. 기업이 노동자를 함부로 부리는 자유, 권력자가 더 큰 힘을 휘두르기 위한 자유가 아닌가?
제대로 된 자유를 위해서는 평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작업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들,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성소수자들과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바로 자유가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바로 이러한 개인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이다. 힘의 균형이 권력자와 다수에 집중된 구조에서 개개인의 시민들이 차별 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를 위하여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것이다.
또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개별법으로는 평등을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이미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핑계도 제대로 알고 대야 하지 않는가. 윤 후보가 진정 시민 개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할 것을 걱정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하루빨리 나설 일이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한 국민인식조사(4월 22일~27일) 결과를 보면 88.5%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 두 후보의 지지율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그럼에도 사회적 합의, 심도깊은 논의를 핑계대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말이다.
88.5% 찬성률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