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수원이 환경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검증하지 않고 전한 조선일보(12/29)
조선일보
조선일보 <단독/"원전, 태양광 부지 0.6%만 있어도 돼">(12월 29일 박상현 기자)에 따르면, 한수원은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해 달라며 9가지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이 중 △태양광에 비해 적은 탄소 배출량 △태양광‧풍력에 비해 적은 부지 사용으로 환경보전 유리 △저장‧수송 편리하고 수급 용이한 원전 원료 우라늄 등 원전이 탄소중립에 유리한 에너지라는 점을 강조한 부분인데요.
하지만 각종 연구결과는 원전이 탄소중립에 유리한 에너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마크 제이콥슨 교수는 저서 <100% 청정 재생에너지와 저장장치>를 통해 "원전은 건설부터 운영, 그리고 폐기 과정에서 전력 1kWh(킬로와트시)를 생산할 때 온실가스 약 78~178g가 발생한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진태영‧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가 발표한 논문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중 어느 것이 탄소배출 저감에 더 효과적인가-패널 데이터 분석>은 "원자력은 재생에너지와 달리 탄소 저감에 기여하지 않으며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서는 원전이 아닌 재생에너지의 개발과 확장이 필수적"이라고 결론 냈습니다. 2020년 과학저널 <네이처 에너지>에 실린 영국 서섹스대와 독일 국제경영대학원 연구팀 논문도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에 모두 투자하는 것보다 재생에너지에 집중하는 것이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적"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원전이 태양광이나 풍력에 비해 적은 부지를 사용해 환경보전에 유리하다는 주장도 사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세계원전시장 인사이트>(8월 6일)에 실린 <원전해체 부지복원 기술현황 및 향후전망>을 보면 "해외 원전 해체 과정에서 부지 내 토양의 방사능 오염이 보고된 경우"가 있지만 "아직 고농도 대용량의 방사성 오염토양을 경제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다"고 지적됐는데요. 원전으로 토양이 오염될 가능성 적지 않고, 고농도 방사성 오염 토양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기술도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양광이나 풍력에 비해 적은 부지를 사용하니 환경보전에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조선일보는 각종 연구결과와 논문이 제시한 근거나 반박은 언급하지 않고, 한수원 의견서만 일방적으로 부각했습니다.
'미국, 원전 청정에너지 분류'도 사실 아니다
조선일보는 한수원이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해달라는 근거 중 하나로 원전을 탄소중립의 주요 수단이라고 평가하며 '미국‧EU도 원전을 녹색‧청정 에너지원으로 분류'했다고 주장했는데요. 먼저 미국이 원전을 녹색‧청정 에너지원으로 분류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뉴스톱 <팩트체크/바이든 기후대책 우리 정부와 확연히 다르다?>(2020년 11월 10일)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거기간 중 공약을 통해) 원자로 건설비용이 절반수준인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가 100% 청정에너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즉 "원전은 청정에너지 100%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하나의 옵션일 뿐"이라는 겁니다. 뉴스톱은 카멜라 해리스 부통령도 "청정‧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동안 원전 이용을 지지한다"며 "원전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원전을 녹색‧청정 에너지원으로 분류했다'는 것과 '100% 청정에너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전을 이용하겠다'는 것은 아예 다른 내용입니다.
조선일보는 앞서 <바이든 "원전은 무공해 청정에너지">(12월 10일 조재희 기자)를 보도하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원전은 무공해 청정에너지"라고 발언했다는 인상을 줬는데요. 이도 사실이 아닙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 계획안에 서명하며 '원전은 탄소중립의 보조수단'이라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일 뿐입니다.
EU택소노미 원자력 포함 검토, 연료인상 때문
조선일보는 한수원이 1환경부에 보낸 의견서에 "프랑스‧체코‧폴란드 등 원전 수출‧건설 예정 7국 총리가 유럽연합 위원회에 원자력 역할 중요성 강조 서한을 보내는 등 EU택소노미에 원자력 포함 가능성 높음"으로 밝혔다고 전했는데요. 현재 EU택소노미에 원자력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EU택소노미는 "온실가스 감축, 오염 방지 및 관리,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자원순환, 생물다양성 보전, 기후변화 적응 중 하나의 환경목표에 대한 기여 과정에서 다른 환경목표에 심각한 피해가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런 규정으로 EU택소노미에 원자력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EU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해야 한다는 측과 포함하면 안 된다는 측이 대립하면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고심해왔는데요. 그러던 중 10월부터 석탄과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고 전력가격도 상승하면서 EU택소노미에 원자력이 포함될 가능성이 커진 것입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도 11월 1일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재생에너지가 더 필요하지만 안정적인 에너지원인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동안 필요한 가스도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즉 EU택소노미에 원자력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원자력이 녹색‧청정에너지라서가 아니라 전력가격 상승이 가져온 영향 때문입니다.
'탈원전으로 전기료 인상'도 사실 아니다
한수원은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해달라는 또 다른 근거로 △4세대 원전 '혁신형 SMR'로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사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내용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은 <논평/한수원은 현실성 없는 SMR로 탄소중립을 논하지 말라>(10월 29일)에서 "혁신형 SMR은 안전성이 검증된 바 없으며, 수용성과 경제성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다"고 한수원을 비판했습니다. 또한 "SMR은 크기만 작은 핵발전소일 뿐"이고 "방사능 물질 유출이나 고장 등의 사고 위험성, 핵폐기물 발생 등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사실관계 확인을 하지 않고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한수원 의견서를 그대로 옮겨 적듯 전했습니다. 급기야 독자의견 <왜 탈원전 철회하지 않나>(12월 29일 이영희 독자)에서는 "탈원전으로 한전은 적자로 전환했고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 나왔는데요. 독자의견 역시 사실과 다릅니다. 한국전력이 3분기까지 2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낸 건 맞습니다. 그러나 한전 적자 원인은 "고유가로 연료비와 전력구입비가 늘었지만, 전기요금을 제대로 올리지 못해 비용을 요금으로 거둬들이지 못한 것"에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탈원전정책 때문이 아니라 국제유가 등 연료비 상승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선일보 독자의견에서는 "프랑스‧영국 등도 원전을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부분도 사실과 다릅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노후로 인한 폐쇄 예정 원전을 새로운 원전이나 소형 모듈 원자로(SMR)로 교체하는 것에 불과한데요. 이걸 원전 확대로 보긴 어렵습니다.
탈원전 반대하는 국회의원 보도자료 그대로 기사화
조선일보가 입수한 한수원의 환경부 제출 의견서와 보도자료 출처는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입니다. 윤 의원은 경상남도 양산 갑을 지역구로 하고 있는데요. 9월 7일 국회 예결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도 김부겸 국무총리를 상대로 "문재인정부가 탈원전정책을 강행해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했고, 두산중공업의 원전 관련 매출이 감소했다"며 "탈원전정책은 경남경제 파괴정책"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또한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초소형원자로 등 새로운 원전기술을 원전산업의 메카라고 불리는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조성해 우리나라가 세계 원전산업의 새로운 전환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0월 12일 국회 한국전력공사·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공기업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이처럼 강력하게 탈원전을 반대하고 있는 윤영석 의원이 이번엔 한수원이 환경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입수해 언론에 제공했고, 조선일보가 가장 먼저 기사화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