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단독 고발... 청소년까지 노리는 BDSM '변태 바닐라'

[디지털성범죄, 지금 ⑥] 경찰 신고 더 어려운 사각지대... "수사관 BDSM 교육 받아야"

등록 2022.02.03 06:04수정 2022.02.07 16:13
3
n번방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추적단 불꽃>이 불법 성착취사이트 실태와 BDSM 위험성을 고발합니다. 잘 안 보이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인권 침해 문제를 <추적단 불꽃>은 그동안 끈질기게 추적해왔습니다. 또한 디지털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연대도 구축하고 있습니다. <추적단 불꽃>의 기획 보도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편집자말]
지난해 8월, 여성가족부가 진행한 '나다움 어린이 책 교육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지정된 몇 도서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책에서 성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학생들의 조기 성애화가 우려된다는 지적이었다. 해당 사업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개선하고자 만들어진 사업이었지만, 논란이 된 지 이틀만에 여성가족부에서는 지적된 책을 전량 회수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렇듯 보편적 성에도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BDSM은 차마 입 밖에 꺼낼 수조차 없는 이슈다. BDSM은 지배와 복종, 가학과 피학 등 성적 성향을 말한다. BDSM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 변태의 문화, 혹은 음지의 문화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번역 출간된 BDSM 관련 책 <S&M페미니스트>를 쓴 저자 클라리스 쏜은 BDSM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SM은 사악하다, 비정상적이다, 정신적이거나 감정적인 불안정의 증후다, 원래 폭력적이다, 반페미니즘이다"등 5가지로 요약하면서, 이런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어 BDSM 관계 속에서 학대받은 사람들은 특히 고발하기를 꺼린다고 설명한다.

"한 여성이 강간을 고발하려 할 때 합의 하에 뺨을 맞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라." (S&M페미니스트 중에)

우리는 BDSM을 경험한, 혹은 잘 알고 있는 이들의 증언이 필요했다. 그들이 직접 느낀, 사회가 바라보는 BDSM은 어떠한지 듣고자 함이었다. 우리는 트위터를 통해 인터뷰에 참여할 참가자를 모집했다. 각자가 경험한 피해는 달랐지만, BDSM과 연관된 피해를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BDSM은 지배와 복종, 가학과 피학 등 성적 성향을 말한다.
BDSM은 지배와 복종, 가학과 피학 등 성적 성향을 말한다. 추적단 불꽃
 
불법 촬영 범죄에 더 취약

과거 연인이 BDSM에 흥미가 있었다는 A씨, 그는 성적으로 연인을 맞춰주기 위해 관련 커뮤니티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A씨는 성향자가 아닌 터라 BDSM 플레이(BDSM 행위를 하는 것을 '플레이'라 칭함)에 두려움만 느낄 뿐이었다. 어느 날 애인은 A씨에게 낯선 이와 함께, 셋이 플레이하자고 말했다. A씨는 모멸감과 패배감을 느끼면서도, 애인의 취향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강박으로 원하지 않은 플레이를 해야 했다. 오래된 일이지만, A씨에게는 아직도 그 사건이 큰 상처로 남아있다.

B씨는 BDSM 성향자로, 트위터에서 만난 이와 플레이를 진행했다. 그러나 B씨의 상대는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행위를 하며 플레이 내내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B씨는 그에게 싫다고 말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게 자신에게 피해로 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명의 피해자 모두, 외부에 자신의 피해를 알릴 수 없었다.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이란 사회의 인식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BDSM 성향자는 불법 촬영 범죄에 더 취약하다. BDSM 플레이 중에는 상대의 눈을 가리고 하는 플레이도 있어 상대가 나를 찍는지를 확인할 수조차 없는 때도 있다. 또한 주종관계의 경우, 합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로 주인이 시키는 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발생하는 불법 촬영도 있다. 이렇게 촬영된 피해물은 피해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포되기도 한다.


C씨는 플레이를 한 상대가 불법 촬영물로 지속적인 협박을 했다. C씨는 "그때는 합의를 한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저 심리적 지배에 의한 강압적 관계였다"고 증언했다. 가해자는 C씨가 플레이를 거부하면 신상을 가지고 협박하며, SNS를 통해 주변 지인들에게 불법 촬영물을 뿌리겠다는 협박을 일삼았다고 한다. 온라인상에서 만난 낯선 이의 협박은 C씨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피해 이후 수년이 흘렀음에도, C씨는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 7월, 본인이 디지털 성범죄를 겪었지만, 성향자라 피해를 밝히기 힘들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당시 연락을 줬던 피해자는 불법 촬영을 비롯한 폭행, 협박 등을 겪은 상태였다. 우리는 피해자에게 법률 지원을 비롯한 의료 지원 등을 안내한 바 있다. 불법 촬영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지 20년도 넘은 악질적인 범죄다. 누구에게나 괴로울 수밖에 없는 끔찍한 피해지만, BDSM 성향자에게 있어 불법 촬영과 비동의 유포는 더 끔찍하다. 불법 촬영된 성관계 영상에 그간 숨겨 왔던 본인의 성적 지향까지 담겨 타인에게 유포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 온 전화... 미성년자 피해자들
 
 “미성년자에게 관심을 집중할수록 미성년자의 섹슈얼리티는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된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미성년자에게 관심을 집중할수록 미성년자의 섹슈얼리티는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된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추적단 불꽃
 
"미성년자에게 관심을 집중할수록 미성년자의 섹슈얼리티는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된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우리는 지난 2년간 디지털 성범죄 현장을 모니터링하면서, 청소년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을 넘어 성착취하는 가해자들과 꾸준히 마주하고 있다. 특히 트위터를 통해 무분별하게 공유되는 BDSM 관련 정보를 악용해 성향자인 청소년을 꾀어내고 성착취하는 가해자들도 있다. <추적단 불꽃>과 인터뷰한 한 성향자는 "(트위터에서) 아동·청소년을 노리는 성향자, 혹은 성향자인 척 하는 '변태 바닐라'(성향자가 아님에도 '성향자'를 가장해 이들과의 관계를 노리는 이들을 지칭하는 은어)들은 비교적 심리적 지배가 쉬운, BDSM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청소년을 노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혹시 박**씨 아세요? 그 사람이 불법으로 성관계 영상을 찍은 것 같은데 경찰서 한 번 오셔서 확인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미성년자 피해자 D씨는 트위터에서 만난 이와의 플레이 이후,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았다. D씨는 전화를 받는 순간 철렁했다. 경찰의 입에서 나온 피의자 이름이 트위터를 통해 만났던 낯선 이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D씨가 경찰서에 방문해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는 초소형 불법 카메라를 집안 곳곳에 설치해 플레이를 촬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해당 사건은, 박모씨와 만난 다른 사람이 그의 집 안에서 불법 초소형 카메라를 발견해 신고하면서, 그의 범행이 발각된 것이었다. 심지어 트위터에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할 때 그는 본인을 30대라고 소개했지만, 알고 보니 40대였다. 경찰이 피해물 유포는 안 됐다고 말했지만, D씨는 여전히 유포될까봐 불안을 지울 수 없다.

우리에게 연락한 성착취 청소년 피해자 중에는 "성적 행위를 한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서 신고를 못했다"고 증언한 이들이 다수다. 2018년, 피해자 E씨는 만 13세 때 성 착취 피해를 보았으나, 당시에는 본인이 겪은 일이 범죄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1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피해자가 트위터에 올린 고발 글을 보고 본인도 성착취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앞서 카카오톡 오픈 단체 채팅방에서 만나 개인 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해졌던 가해자, 그는 E씨의 개인 정보를 물어봤고 E씨는 의심 없이 알려줬다. 이때부터 가해자의 성착취와 협박이 시작됐다. 가해자는 본인의 자위 영상과 사진 등을 E씨에게 전송하면서 '너도 성기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강요했다. E씨는 "몇 번 거절했지만 보내달라기에 결국 보내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가해자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BDSM 자세 동작을 취한 사진을 E씨에게 보내주면서, 이대로 찍어 전송하라고까지 협박했다.
 
 한 가해자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BDSM 자세 동작을 취한 사진을 당시 만 13세였던 E씨에게 보내주면서, 이대로 찍어 전송하라고까지 협박했다.
한 가해자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BDSM 자세 동작을 취한 사진을 당시 만 13세였던 E씨에게 보내주면서, 이대로 찍어 전송하라고까지 협박했다. 추적단 불꽃

E씨는 트위터, 카카오톡 오픈 채팅 대화방에서 익명으로 벌어진 일이라 가해자를 잡을 수 없을 거란 막연한 생각에 경찰에 신고할 시도도 못했다. 경찰이 E씨의 상황을 잘 이해할 거라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신고를 한다 해도 경찰에 의해 가족에게 피해 사실이 여과 없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다. 결국 피해를 보고도 수년을 혼자 끙끙 앓았던 E씨는 2년이 지나서야 지역 여성성폭력상담소에서 심리 지원을 받았지만, 앞서 짚은 이유로 인해 여전히 경찰 신고는 하지 못했다.

"경찰 수사관도 BDSM 교육 필요"

국내 성폭력 전문수사관 중 유일한 '마스터(성폭력전문수사관 자격인증 후 5년간 성폭력 수사와 교육, 연구 실적이 두드러져야 부여되는 직책)'인 곽미경 경감은 "수사관들이 청소년의 성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면서 "성범죄를 다루는 수사관들이 막연하게 청소년을 보호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활동은 물론 성적인 활동에서도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성인과 똑같은 인간으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 경감은 본인도 "지난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공론화되고서야 '일탈계(일탈적 사진 등을 게재하는 SNS 계정)' 하는 청소년을 이해했고, 이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었다"며 "이전에는 비슷한 사건을 만났어도, 청소년이 성적인 표현을 한다는 사실을 제 자신도 인정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곽 경감은 "성향자인 청소년 역시 사회적인 인식에 부딪힐까봐 범죄를 당하고도 수사기관에 말하기 두려운 심정이 이해된다"고 덧붙였다.

쉐리 슬릭 박사(덕성여대 차미리사교양대학 교수)는 BDSM 관계에서 피해를 본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수사관들 자체가 BDSM과 폭력의 차이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피해를 입더라도 BDSM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사관들에 의해 그저 이례적이고 혼란스러운 성행위로 여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관계 내에서 합의를 어기는 것 자체를 범죄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BDSM 커뮤니티의 폭력 피해자가 쉽게 범죄를 신고할 수 있도록 경찰 수사관들 역시 BDSM 관계와 폭력의 차이점에 대해 교육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세진 동작청소년성문화센터 활동가는 "한국에서는 성인과 청소년을 떠나, 여성이 성적 자기 결정권을 주체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청소년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BDSM을 포함한 다양한 성적 실천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면서 "청소년들이 성적 피해를 보거나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관계망 등 여러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분명히 피해를 보았고, 현재도 그 상처가 있다. 이들이 BDSM 성향자이든 아니든, 또 BDSM 행위 자체를 했든 하지 않았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건 피해자는 성향자라는 이유로 성폭력을 고발하기 어려워하고 있고, 이런 점을 이용해 가해자들이 온갖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추적단 불꽃 #BDSM #SSC #청소년 성착취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찰까지 출동한 대학가... '퇴진 국민투표' 제지에 밤샘농성 경찰까지 출동한 대학가... '퇴진 국민투표' 제지에 밤샘농성
  2. 2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3. 3 윤석열 정부가 싫어한 영화... 시민들 후원금이 향한 곳 윤석열 정부가 싫어한 영화... 시민들 후원금이 향한 곳
  4. 4 [단독] "가면 뒈진다" 명태균, "청와대 터 흉지" 글도 써 [단독] "가면 뒈진다" 명태균, "청와대 터 흉지" 글도 써
  5. 5 명태균, 가이드라인 제시? "계좌 추적하면 금방 해결" 명태균, 가이드라인 제시? "계좌 추적하면 금방 해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