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제주풍경
김재완
그렇게 지난해 10월, 나는 김포에서 출발하는 제주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아내는 나의 추진력이 놀랍다고 했지만, 바구니 안에서 꿈이 숙성되다 못해 상해버리는 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올레 16코스의 출발점에서 역사적인(?) 첫 스템프를 찍었다. 나와 아내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종주라도 한 것마냥 호들갑을 떨고 있자 옆에 있던 부부가 우리를 보며 물었다.
"부러워요. 이제 시작하시나 봐요. 우리는 오늘이 마지막 코스에요. 우리는 6년 만에 종주했어요."
아내와 나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고, 그들은 우리에게 격려의 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종주를 마칠 때쯤이면 저들과 비슷한 나이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보다 더 근사한 출발이 있을까?
코스 중간 지점에서 스템프를 찍고 정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20대 초반의 청년 둘이 다가왔다. 나는 아저씨답게 "올레길을 걷고 있냐?"라고 그들에게 말을 걸었고, 청년들은 하루에 2코스씩 걷고 있노라 대답하며 우리의 일정도 물었다.
아내는 그들의 체력에 놀라며 5개년 계획을 말해주었고, 청년들은 우리의 장기 프로젝트 소식을 듣고 더 놀랐다.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청년들은 서둘러 다시 길 위에 올랐다. 올레길 위에서는 각자 다른 속도로 걷고 있지만 도착지는 동일하다.
첫 번째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숨구멍이 하나 생긴 것처럼 호흡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얼마 전 해가 바뀌자마자 두 번째 올레길을 다녀왔다. 앞으로 5년의 시간 동안 길 위에서 어떤 이들을 만나고, 어떤 추억을 쌓게 될지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기다려진다.
글의 마지막이 진부하거나 과장된 표현이라 비웃을 수도 있으나, 하고 싶은 일을 해본 자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나 아직 안 죽었다. 출간
찌라시 한국사. 찌라시 세계사 저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