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은 커도 아기 같은 표정의 여름이
박은지
'까까' 먹고, '응가' 하고
동네에서 여름이와 산책하다가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들을 만나면, 백이면 백 여름이를 가리키며 '멈머다, 멈머!'라고 외친다. '강아지'의 아기용 단어가 '멈머'인 모양이다. 그런데 실은 성인 두 명이 사는 우리 집에서도 아기들이나 쓸 법한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우리 집 개와 고양이는 '간식' 대신 '까까'를 먹고, 씻고 나면 '몸을 터는' 대신 '푸드득'을 하고, '배변'이 아니라 '응가'를 하러 나간다.
인터넷에서 이런 유머 게시글을 본 적이 있다. 회사에서 심각한 분위기로 회의를 하던 중, 집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장님이 한숨을 푹 쉬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맘마 먹고 합시다.' 웃긴 일화지만 아기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이해가 가고도 남을 것이다. 나도 연애할 때까지만 해도 설마 우리 부부의 사이에 '응가'라는 유치한(?) 단어가 등장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과 각각 여름이 산책을 시키고 나면 서로 '여름이 응가 했어?', '오늘 응가 상태 어땠어?'의 정보를 교환한다. 배변 상태가 좋지 않으면 컨디션이 나쁜지, 어떤 간식 때문인지, 알러지 반응인지 등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알아듣는 것도 아닌데 굳이 아기 대하듯 말하게 되는 건 왜일까.
이유를 생각할 것도 없이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순간 보호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는 본능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 사회에서 아무리 웃음기 없이 시크한 사람이라고 해도, 집에 반려동물이 있다면 반려동물과 대화할 때만큼은 분명 단어가 의성어 위주로 바뀌고 혀가 짧아질 것이다. 반려동물은 우리에게 늘 어린 아기이거나 혹은 큰 아기고, 우리의 보호를 받는 그 보드랍고 소중한 생명체에겐 늘 다정한 목소리가 필요한 법이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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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없는 우리 부부가 "까까, 맘마, 응가" 이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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