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위성정당 사태로 얼룩진 미완의 선거제도 개혁. 선거제도개혁연대의 진단과 처방을 들어본다.[기자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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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월 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평중학교에 설치된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소에서 퇴근한 직장인과 시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2016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선거, 민주주의를 키우다>라는 제목의 기획전시를 진행했다. 다사다난했던 현대사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온 선거를 통해 마침내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뤄냈다는 의도였다. 전시 한쪽에 놓인 막걸리통과 고무신은 그 시절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세도가들은 막걸리 한 잔, 고무신 한 켤레, 고급 비누 등으로 유권자를 희롱했고, 주권자인 시민은 기꺼이 농락당할 만큼 가난했다.
2022년 지금 대한민국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천만의 말씀!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돈-정치가 판치고 있다. 예스럽게 막걸리, 고무신 돌리는 수준이 아니다. 돈-정치는 세련되게 제도의 옷을 입고 변신했다. 대한민국을 어지럽히는 돈-정치 3종 세트인 보조금, 기탁금, 정치후원금 세액공제의 문제점을 밝힌다.
보조금: 큰 정당은 세금으로, 작은 정당은 알아서
첫 번째는 보조금이다. 보조금은 정당의 보호·육성을 위해 국가가 정당에 지급하는 돈이다. 보조금은 다시 매년 분기마다 주는 '경상보조금'과 선거가 있는 해에 주는 '선거보조금'으로 나뉜다.
보조금은 어떻게 나눠줄까? 일단 보조금 총액의 50%를 국회의원 20명 이상으로 이뤄진 교섭단체에 나눠준다. 5석 이상을 가진 정당에는 5%를 나눠주고, 5석 미만의 정당은 또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만 2%를 나눠준다. 그러고 남은 돈은 또다시 각 정당의 의석 비율에 따라 나눠준다. 그러고도 또 남은 돈은 국회의원 선거의 득표수에 따라 나눠준다.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국회의원이 많은 큰 정당일수록 받고, 받고, 또 받는다는 것이다.
실상이 이러다 보니 정당을 보호하고 육성을 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진다. 국회의원이 많은 정당들은 당원의 당비나 시민들의 후원금이 아니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받은 보조금을 가지고 자기들 마음껏 정치를 한다. 돈이 많으니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결과적으로 표도 많이 얻고 그러면 또 보조금을 많이 가져가고... 이렇게 돈-순환이 계속된다.
반면에 국회의원이 별로 없거나 아예 없는 정당은 보조금을 조금만 받거나 아예 못 받는다. 당원들이 낸 당비에만 의존하며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이미 큰 정당만 더 커지고, 작은 정당은 계속 작은 상태로 머물고, 여기에 새로 생기는 정당은 발붙이기도 어렵다. 정당을 보호하고 육성하겠다는 보조금의 역설이자 돈-정치의 현실이다.
기탁금: 정치하라, 돈 있는 사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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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폐 자료사진. ⓒ pixabay
두 번째는 기탁금이다. 기탁금이란 원래 정치자금을 정당에 기부하고자 하는 개인이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맡기는 돈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후보자로 등록하고자 하는 사람은 선관위가 정해놓은 액수만큼 반드시 돈을 내야 한다. 이것이 만만치 않다.
▲ 대통령 선거는 3억 원 ▲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는 1500만 원 ▲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는 500만 원 ▲ 시·도의회 의원 선거는 300만 원 ▲ 시·도지사 선거는 5000만 원 ▲ 자치구·시·군 의장 선거는 1000만 원 ▲ 자치구·시·군의원 선거는 200만 원을 내야 한다. 선거마다 액수가 각각 다른데 뚜렷한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이 어렵다.
더군다나 선거에서 15% 이상 득표하면 기탁금 전액을 돌려주고, 10% 이상 득표하면 반액을 돌려준다(여담으로, 선거 때 쓴 돈도 마찬가지다.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돌려주고, 10% 이상 득표하면 반액을 돌려준다. 결국 거대정당의 유력한 후보들은 시민의 세금으로 자기 선거를 치른다).
정치학자들, 시민단체들은 비싼 돈을 요구하는 기탁금 제도가 여성, 청년 등 정치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정치 진출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애물이라고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세액공제: 후원하라, 중산층 이상 남성만
개인이 정당의 중앙당후원회나 정치인후원회에 후원을 하면 연간 10만 원까지 전액 세액공제를 해주고, 10만 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15%, 3000만 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25% 세액공제를 해준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후원하면서 '절세'까지 할 수 있으니 엄청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기본이 '세액공제'이다 보니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 또는 세금을 10만 원 이상 낼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유명무실하다. 오로지 중산층 이상, 그중에서도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중장년 남성에게 유리한 제도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오로지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성만이 정치적 권리를 누렸는데,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다른가.
때때로 큰맘 먹고 내 맘 같은 정치인에게 10만 원 후원했는데 알고 보니 과세 기준 이하여서 씁쓸하게 웃는 시민들을 본다. 또는 마음은 굴뚝 같지만, 주머닛돈에 여유가 없어 정치후원을 요청받으면 멋쩍게 웃는 시민들도 본다. 이들도 당당하게 정치하고 후원할 권리를 보장해줄 수는 없을까?
대안: 보조금 골고루, 기탁금 없애고, 정치 기본소득 도입
힘을 가진 사람들이 안 하려고 해서 그렇지, 대안은 늘 있다. 앞서 살펴본 보조금, 기탁금, 세액공제 등 돈-정치의 3종 세트를 깨야, 비로소 주권자인 시민이 마음껏 참여하는 정치다운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큰 정당이 삼중으로 받는 보조금 제도를 깨야 한다. 정당을 보호하고 육성하겠다는 보조금의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 2016년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국회의원 수가 아니라 선거의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받지 않았다. 이제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의 입장이 여전한지 궁금하다.
둘째, 돈 있는 사람만 정치하라는 기탁금 제도를 깨야 한다. 기탁금 제도를 아예 폐지하거나, 정 아쉬우면 상징적인 수준의 작은 액수로 하향하는 것이 옳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데, 무슨 근거를 가지고 돈 액수에 따라서 출마를 제한하는가.
셋째, 돈 많은 사람만 후원과 절세의 기쁨을 누리는 세액공제 제도를 깨야 한다. 정말 정치를 활성화하고 시민의 참여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선거제도개혁연대>가 주장하는 대로 '정치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이 옳다. 시민 모두에게 일정한 액수의 정치기본소득을 제공해서 원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후원하게 하고, 후원하지 않고 남은 금액은 다시 국고로 거둬들이는 것이 공공선에 더 부합하는 일이다.
돈이 대한민국 정치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주권자인 시민으로서 이 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면 깨버리면 된다. 어려워 보이지만 유권자 다수가 싫다고 하면 의외로 쉽게 깨지는 것이 정치의 원리다. 아마도 큰 정당들은 당신들 공통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큰일이라도 난 듯 서로를 헐뜯으며 관심을 돌리려 할 것이다. 그러니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거대 정당의 정치꾼들만 배 불리는 보조금, 기탁금, 세액공제 제도. 싫다고 하고 깨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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