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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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기탁금이다. 기탁금이란 원래 정치자금을 정당에 기부하고자 하는 개인이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맡기는 돈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후보자로 등록하고자 하는 사람은 선관위가 정해놓은 액수만큼 반드시 돈을 내야 한다. 이것이 만만치 않다.
▲ 대통령 선거는 3억 원 ▲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는 1500만 원 ▲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는 500만 원 ▲ 시·도의회 의원 선거는 300만 원 ▲ 시·도지사 선거는 5000만 원 ▲ 자치구·시·군 의장 선거는 1000만 원 ▲ 자치구·시·군의원 선거는 200만 원을 내야 한다. 선거마다 액수가 각각 다른데 뚜렷한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이 어렵다.
더군다나 선거에서 15% 이상 득표하면 기탁금 전액을 돌려주고, 10% 이상 득표하면 반액을 돌려준다(여담으로, 선거 때 쓴 돈도 마찬가지다.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돌려주고, 10% 이상 득표하면 반액을 돌려준다. 결국 거대정당의 유력한 후보들은 시민의 세금으로 자기 선거를 치른다).
정치학자들, 시민단체들은 비싼 돈을 요구하는 기탁금 제도가 여성, 청년 등 정치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정치 진출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애물이라고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세액공제: 후원하라, 중산층 이상 남성만
개인이 정당의 중앙당후원회나 정치인후원회에 후원을 하면 연간 10만 원까지 전액 세액공제를 해주고, 10만 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15%, 3000만 원 초과 금액에 대해서는 25% 세액공제를 해준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후원하면서 '절세'까지 할 수 있으니 엄청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기본이 '세액공제'이다 보니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 또는 세금을 10만 원 이상 낼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유명무실하다. 오로지 중산층 이상, 그중에서도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중장년 남성에게 유리한 제도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오로지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성만이 정치적 권리를 누렸는데,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다른가.
때때로 큰맘 먹고 내 맘 같은 정치인에게 10만 원 후원했는데 알고 보니 과세 기준 이하여서 씁쓸하게 웃는 시민들을 본다. 또는 마음은 굴뚝 같지만, 주머닛돈에 여유가 없어 정치후원을 요청받으면 멋쩍게 웃는 시민들도 본다. 이들도 당당하게 정치하고 후원할 권리를 보장해줄 수는 없을까?
대안: 보조금 골고루, 기탁금 없애고, 정치 기본소득 도입
힘을 가진 사람들이 안 하려고 해서 그렇지, 대안은 늘 있다. 앞서 살펴본 보조금, 기탁금, 세액공제 등 돈-정치의 3종 세트를 깨야, 비로소 주권자인 시민이 마음껏 참여하는 정치다운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큰 정당이 삼중으로 받는 보조금 제도를 깨야 한다. 정당을 보호하고 육성하겠다는 보조금의 취지로 돌아가야 한다. 2016년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국회의원 수가 아니라 선거의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받지 않았다. 이제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의 입장이 여전한지 궁금하다.
둘째, 돈 있는 사람만 정치하라는 기탁금 제도를 깨야 한다. 기탁금 제도를 아예 폐지하거나, 정 아쉬우면 상징적인 수준의 작은 액수로 하향하는 것이 옳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데, 무슨 근거를 가지고 돈 액수에 따라서 출마를 제한하는가.
셋째, 돈 많은 사람만 후원과 절세의 기쁨을 누리는 세액공제 제도를 깨야 한다. 정말 정치를 활성화하고 시민의 참여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선거제도개혁연대>가 주장하는 대로 '정치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이 옳다. 시민 모두에게 일정한 액수의 정치기본소득을 제공해서 원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후원하게 하고, 후원하지 않고 남은 금액은 다시 국고로 거둬들이는 것이 공공선에 더 부합하는 일이다.
돈이 대한민국 정치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주권자인 시민으로서 이 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면 깨버리면 된다. 어려워 보이지만 유권자 다수가 싫다고 하면 의외로 쉽게 깨지는 것이 정치의 원리다. 아마도 큰 정당들은 당신들 공통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큰일이라도 난 듯 서로를 헐뜯으며 관심을 돌리려 할 것이다. 그러니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거대 정당의 정치꾼들만 배 불리는 보조금, 기탁금, 세액공제 제도. 싫다고 하고 깨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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