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선거 후보(왼쪽부터)가 11일 오후 2022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대한민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도 일반 직원들의 임금보다 임원 연봉의 상승 속도는 매우 빨랐으며, 동시에 저임금을 전전하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숫자도 늘어갔다. 그 결과 피케티 등이 발간한 '세계 불평등보고서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인구 상위 10%에 속한 사람은 연평균 1억8천만원의 소득을 벌고, 하위 50%에 속한 사람은 평균 1천2백만원을 버는 등 두 집단 사이 소득 격차가 14배나 되는 상황이 되었다.
더욱이 자산불평등 격차는 무려 52배였다. 이걸 과연 '현실적'이라고 인정해야 할까?
그럼 한국의 기업임원들은 얼마나 고액의 연봉을 받을까? 정의당이 매출 순위 50대 대기업을 뽑아서 분석해 본 결과, 2018년 기준으로 등기 임원의 평균 연봉은 13억 2000만 원이었다. 당시 최저임금의 무려 7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가운데 현대자동차는 158배, GS칼텍스는 138배, LG전자는 121배, SK하이닉스는 94배로 격차가 매우 컸고,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18배, 산업은행은 17배였으며,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9배, 한국가스공사는 9배, LH는 9배였다. 특히 한국 민간기업들의 임금 격차는 도저히 양해 불가능한 수준까지 벌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범위를 넓혀서 전체 상장기업 임원(사내이사)으로 확대해서 그 숫자를 확인해보자. 전체 임원의 약 13% 정도인 958명이 5억 이상의 연봉을 받았는데, 미등기 이사를 포함해도 1500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갈수록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이들 연봉은 공정한 '능력'의 결과일까? 불평등 해소를 위해 이 정도 규모의 초고액 연봉임원들의 한도를 정하는 것이 비현실적인 걸까?
최고임금 아이디어를 불러냈던 루즈벨트 대통령
이 후보가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하는 최고임금제를, 과거엔 매우 현실적이고 시급한 사안이라고 판단한 대통령도 있었다. 바로 뉴딜정책을 추진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다. 그는 1941년 국민들을 향해 "저소득과 고소득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미국인 중 어느 누구도 세금을 내고 난 후에 한 해에 2만 5천 달러(지금 가치로 약 5억원 정도) 이상의 순소득을 가져선 안 된다", 즉 한 마디로 연봉을 50억원 받든 500억원을 받든 집에는 5억원 이상을 가져갈 수 없고 나머지는 모두 100%세금으로 걷어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루스벨트의 주장은 비현실적이서 폐기되었는가? 그렇지는 않았다. 의회는 루스벨트 제안 자체는 거부했지만, 대신에 소득세 최고세율을 무려 94%까지 끌어올리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 제도는 1960년대까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이어졌고 1970년대에도 최고세율은 70% 이상을 유지했다. 부자에게 매기는 세율이 드라마틱하게 추락하여 35%까지 내려간 것은 1980년대 레이건 시대 이후다.
이제 우리는 다시 냉정하게 현실을 짚어봐야 한다. 소득불평등 격차가 14배 나고, 자산불평등 격차가 52배가 나는 오늘의 현실이야말로 지극히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오히려 소득격차가 최대 30배가 넘지 말아야 한다는 심상정 후보의 공약이 바뀌어야 할 새로운 내일을 '현실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묻고 싶다. 임금격차를 30배로 제한하는 것을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고, 종부세나 가상자산 과세도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 실용주의자 이재명은, 결국 지금의 지독한 불평등과 부익부 빈익빈이 그냥 '인정할 만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대선 후보가 걱정해야 할 것은
이 후보가 '최저임금의 30배'를 비현실적이라고 하면서 우려한 '삼성임원의 중국탈출 러시'와 '대기업 몰락 촉진 걱정'으로 초점을 이동하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이 대목에서 글로벌 자본이 자주 써먹던 협박 논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특히 위협적이었던 것은, 자본은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데 비해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거나, 정부가 법인세 인상을 거론하려고 할 때마다 기업들은 "기업경영에 우호적인 환경이 안되어서 동남아로 공장을 옮겨야겠다"는 식의 협박을 써왔다. 그럴 때마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봐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해야 했고, 정부도 세금인상을 미뤄야 했다.
한 두 나라가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의 기업들이 이런 식이었다. 심지어는 각 국가들이 기업유치를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노동자들 권리를 유보'하겠다고 경쟁할 정도였다. 이른바 기업의 환심을 사기 위한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the bottom)'가 시작된 것이다. 수십년 동안 기업들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른, 가장 비열한 협박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 자칭 '소년공 출신 대선후보'가,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을 협박하던 바로 그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아닌가?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이 후보는 주로 보수 포퓰리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반중, 혐중 정서를 동원하려는 듯 이들이 하필 '중국 기업'으로 스카웃될 것을 걱정한다. 그래서 졸지에 최고임금법이 '중국미소법', '중국시진핑미소법'으로 돌변했고, 이는 결국 중국이 좋아할 것이므로 심 후보의 무책임한 주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재명 후보 말대로라면 오랫동안 경영자들과 임원들 연봉에 인색했던 일본기업의 유능한 인재들은 이미 옛날에 모두 짐을 싸서 고액연봉을 주는 미국기업으로 모조리 가버렸어야 맞을 것이고, 일본 기업은 몰락해 버렸어야 맞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