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7일 오전 서울 글래드 여의도 호텔에서 열린 ‘G3 디지털경제 강국 도약을 위한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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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대 대분기를 거치며 선진국과 후진국이 나뉘어진 이래 그 위치가 교체된 일은 없다. 그때 후진국은 지금도 후진국이고, 그때 선진국은 지금도 선진국이다. 선진국은 선진국 높이의 시선을 가졌고, 후진국은 후진국 높이의 시선에 갇히기 때문이다. 후진국이라도 선진국 높이의 시선을 가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가 전략국가나 선도국가로 벗어난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올라서야 할 때 올라서지 못하면 현상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한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8위 정도를 하던 나라다. 도쿄에 전철이 1927년에 건설되는데,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1913년에 건설된다.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나 이태리보다 더 잘 살았다. 우리도 지금 우상향의 도약하는 길로 갈 것이냐 아니면 우하향의 추락의 길로 갈 것이냐가 갈라지는 변곡점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도약해야 할 때 도약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정치갈등과 사회분열과 포퓰리즘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보다 앞서서 중진국 함정에 빠졌던 나라들이 추락할 때 보여주던 현상을 그대로 겪고 있다. 나는 이것을 매우 위험한 신호로 받아들인다. 내가 '인간 실험장'인 정치 영역에 발을 들인 이유도 바로 이런 위기의식과 책임감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4차산업혁명이라는 문명적 분기점을 맞고 있다. 위기이자 기회이다. 이것이 기회인 이유가 있다. 패러다임이 깨지지 않으면 후발주자들에게는 기회가 없다. 그런데 지금 4차산업혁명이라는 간판을 걸고 기존의 패러다임이 깨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국력이 가장 강할 때이다. 선도국가로 도약할 시도를 해본다면 지금밖에 없다. 문제는 이렇게 황금 같은 기회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정치권에서는 최악의 선거 풍경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기회를 위기로 몰고 가려는 무지와 무모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라를 걱정한다면, 한탄하지 않을 수 없는 답답한 형국이다.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것은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다른 사람이 한 생각의 결과를 받아서 살던 삶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삶으로 옮겨가는 일인데, 여기서는 창의성이 특히 중요해진다. 창의성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표현된다.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자신만의 고유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표현되는 일이므로 전적으로 인격적인 문제가 된다.
선도국가 레벨에서는 윤리적 기업이 더 지속 가능하고 더 큰 이익을 낸다는 것은 상식이다. 인격으로 표현되는 도덕적 민감성이나 윤리적 민감성이 핵심 사안으로 등장한다. 도덕적 민감성이 사회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공사 구분인데,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나 지도자를 뽑겠다고 하는 사람이나 공사 구분을 못하는 일에 대해서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느끼더라도, 그것으로 행위를 교정하지는 않는다. 공사를 구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한다.
도덕적 민감성이나 윤리적 민감성이 없어도 상관을 하지 않는다. 무엇을 보고 선택을 하는가. 오직 하나, 진영이다. 저 사람만 아니면 된다는 배제의 신념뿐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모두 많이 추락해 있다. 인간의 뿌리가 되는 가치를 소홀히 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같은 꿈, 같은 사명감
안철수 후보와 나는 둘 다 '초딩'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 하는 주제를 놓고는 같은 생각을 한다.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사명감을 가졌으니, 같이 할 수밖에 없다.
나라의 진보는 미래적일 때만 가능하다. 지금 맞이할 미래는 AI, 메타버스, 생명공학, 초격차 기업이 연상되고 팬데믹도 연상되는데, 이렇게 연상되는 미래와 가장 잘 어울리는 후보는 안철수 후보밖에 없다는 것도 내가 지지하는 중요한 이유다. 2021년 9월 30일, 안철수 후보를 처음 만나서 내가 꺼낸 첫마디는 이랬다. "왜 정치를 하십니까?" 안철수 후보가 대답하였다. "나라를 살려야 합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