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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자들의 '민주정의당' 창당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 43] 정의로운 자들이 불행한 시대가 계속되었다

등록 2022.03.14 16:25수정 2022.03.1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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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 국가기록원
 
신군부는 12.12 하극상으로 군권을 탈취하고 5.17쿠데타로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날조하여 재야인사들을 체포하였다.

박정희의 품안에서 자란 전두환을 수괴로 하는 신군부 반란세력은 박정희 정권이 조장한 호남차별의 그릇된 사고에서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집권하는 데 최대 걸림돌로 인식한 김대중을 제물로 만들기로 했다.

광주를 콕 찍어 분란지점으로 택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 18년 동안 조성한 '호남적대' 정책으로 인해 설혹 저항이 일어나더라도 그 불씨가 여타 지역으로 번져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대중을 엮어서 정적을 제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광주를 살육장으로 만들면서 제2의 군부정권이 들어섰다. 5.17쿠데타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모든 집회가 금지되었다. 일반 국민은 광주 시민들의 봉기와 학살자들의 만행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언론은 신군부의 발표만 보도하여 광주의 진상은 묻혔다.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은 광주학살을 자행하고 전임자에게서 학습한대로 국회를 해산한 자리에 입법회의라는 어용기구를 만들었다. 선발된 각계의 기회주의자 81명 중에는 천주교에서도 사제 두 명이 포함되었다. 

국회를 해산하고 그에 대치된 입법회의의 위원으로 명망가들을, 대거 임명했는데 그 중에는 대구교구 이종흥, 전달출 두 사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유신체제 비판에 침묵으로 일관해 오면서, 사제는 정치현실에 초연해야 한다는 궤변으로 늘 정의구현 활동에 찬물을 쏟았던 대구교구장은 불의한 정권의 입법위원으로 두 사제를 공식으로 파견한 셈이 되었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두 사제의 입법위원 문제는 1980년 내내 정의평화위원회와 정의구현 사제들이 주교회의에 공식적으로 질의했던 내용이다. 두 사제의 입법회의 참여가 정당한지, 교회의 사목적 해답을 요구했지만 끝내 묵묵부답이었다.

광주의 고통, 그 현장에 함께 했던 사제들이 투옥되고 고문당했던 그 시간에 대구의 두 사제는 군사독재의 거수기가 되어 숱한 악법을 제정하고 압제자들과 손잡고 있었으며 이것이 바로 지상교회의 양면성인가, 아니면 세상 어느 곳에나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다는 복음의 내용 바로 그것인가. 어느 편이 밀알이며 어느 쪽이 가라지인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지만. (주석 4)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학살의 와중인 5월 24일 서대문구치소에서 김재규 장군의 사형을 집행했다. 깡패들이 의리를 소중히 여기듯이 전두환 무리는 자신들의 '하나회'를 살뜰히 돌봐준 주군에 대한 의리감에서 사제단 등의 구명요청에도 형을 집행한 것이다. 

우리는 김재규를 구하지 못했다. 그를 잃은 슬픔을 되씹으며, 79년 11월 30일 육군교도소로 찾아간 변호인을 통해 연로하신 어머님께 전해 달라며 남긴 그의 시(詩) 〈나와 자유〉를 오늘 다시 한번 음미하게 된다. 남자답게 죽겠노라며 어머님께 남긴 그의 시에서 불타올랐던 자유정신을 읽게 된다.


나를 만일 신이라 부른다면
자유의 수호신이라 부르겠지

나 목숨 하나 바쳐
독재의 아성 무너뜨렸네
나 내 목숨 하나 바쳐
자유와 민주주의 회복하였네
나 사랑하는 삼천칠백만 국민에게
자유를 찾아 되돌려 주었네

만세 만세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10.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만세. (주석 5)

정의로운 자들이 불행한 시대가 계속되었다. 전두환은 '정의사회구현'을 내세우더니 당명에 '정의'를 앞세운 '민주정의당'을 만들었다. 희대의 독재자 네로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주제에 시상(詩想)을 얻는다며 로마시에 불을 질렀다. 어느 시인이 "당신이 어머니와 기독자들을 죽이고 불을 지른 것을 탓하고 싶진 않다. 그런데 제발 시(詩) 만은 짓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전두환 무리는 '정의'를 내세우며 민주정의당을 창당했다. 우리 역사에 정의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지와 불의의 대용으로 쓰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 "인간이 죽은 후에도 길동무가 되는 것은 정의라는 친구밖에 없다. 어떠한 정(情)도 육체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니까."(마수 법전)


주석
4> 함세웅, <광주의 비극, 미완의 아픔을 회상하며>, <암흑속의 횃불(4)>, 27쪽.
5> 앞의 책, 2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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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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