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주한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
전쟁없는세상
반전운동의 논리
전쟁없는세상은 '모든' 전쟁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신념에 기초해 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착한·정당한 전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대화와 협상 이외에 그 어떤 해결책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러시아의 이번 러시아 침공은 명백한 불법 행위다. 러시아는 돈바스의 두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말고 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러시아가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인 무차별적 군사작전은 모두 불법이다.
1990년 이래 서구의 동진 정책이 러시아에 어떤 위협이 됐는지, 침략과 점령에 관한 서구 사회의 위선이 명백하지만 이번 침공의 일차적인 책임은 명백하게 러시아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러시아가 모든 공격을 즉각 중단하고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군대를 철수할 것을 촉구한다.
여기까지는 반전운동 할 때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활동과 논리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전운동에서 임박한 혹은 벌어진 전쟁을 막거나 중단시키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이 일상적인 차별과 착취의 결과물이듯, 평화 역시 일상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반전운동은 전쟁과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우리 일상에서, 그리고 사회 구조에서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포함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1990년 이래 서구의 세력확장 시도에 일상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며 이것은 이번 전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평화운동의 역할은 임박한 혹은 벌어진 전쟁에 대한 반전집회에만 머물지 않는다. 평화시기 무기를 사고 팔아 전쟁을 대비하고 조장하는 시장인 무기박람회에 저항하는 행동을 하고 징병제도에 문제제기를 하며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은 모두 이러한 일상적인 반전운동의 일환이다.
전쟁없는세상은 24일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WRI)의 성명을 번역, 개제하며 사회적 방어(social defense)라는 한국에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소개했다. 반전평화운동은 오래 전부터 전쟁과 같은 폭력적 침략에 대한 비폭력적 대안 및 역사적 사례들을 수집, 연구해왔고 이것을 사회적 방어라 이름 붙였다.
사회적 방어는 영토보다 사회구조를 방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침략자들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지 않기 위해 파업과 같은 활동으로 침략의 이익을 감소시키는 것, 침략 국가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침략자에 대한 자국의 사회적 지지를 약화시키는 것 등이다. 대중 매체의 뉴스 기사들은 마치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개입이나 정상간 대화만을 중요한 것처럼 다루고 있지만 이미 전 세계의 많은 사례들은 이러한 사회적 방어가 매우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사례는 인도일 것이다. 인도는 영국의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대규모 시민불복종과 다양한 비폭력 기술들을 사용했고 결국 독립을 쟁취했다. 바다에서 소금을 채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비싼 영국산 소금을 수입해서 먹도록 강요할 때 소금행진으로 상징되는 불복종캠페인을 벌였고 영국의 비싼 면직물에 대한 보이콧을 벌임과 동시에 물레를 돌려 직접 옷을 지어 입는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래 인도가 어떤 사회가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행위였고 비폭력 독립운동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무엇보다 인도가 택한 비폭력 전략은 영제국의 폭력성이 확대되는 것을 막았는데 같은 영국 식민지 케냐에서 폭력적인 반란에 수많은 강제수용소를 세우고 수천 명을 학살한 것과 대조된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운동(프라하의 봄)을 막기 위해 소련이 침공했을 때 체코슬로바이카 사람들은 비폭력 저항을 사용했다. 그들은 많은 소련군인들에게 프라하의 봄의 정당성을 알렸고 실제로 많은 수가 설득되었다고 한다. 체코슬로바키아는 꼭두각시 정권을 이끌 사람을 수개월 동안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결속력이 강했다. 이 저항으로 인해 전세계의 공산당에서 소련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이번 전쟁의 결과가 어떤 식으로 드러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성명서에 '러시아가 수립할 새 정부에 대한 복종을 거부할 것을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러시아 국민들과 러시아 군인들이 자국 정부의 전쟁 행위에 대한 모든 복종을 거부하고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며 푸틴 정권을 축출할 것을 호소'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사회적 방어의 일환이다.
이번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시민들, 그리고 전세계인의 저항이 막중하다. 이미 수천의 러시아 시민들이 반전시위 중 체포되고 있고 사회 각계 각층의 다양한 반전의 메시지들이 발표되고 있다(
러시아 내 반전 메시지 모음 자료 보러 가려면 클릭).
벨라루스에서는 러시아 측으로 파병될 군인을 징집하는 정부 정책에 응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시작되었고 모병군인이 아닌 징집군인은 전쟁에 내보낼 수 없다는 국내법을 어겨가며 전쟁을 강행하는 푸틴의 정책에 맞서 러시아 탈영병들의 망명을 허용하라는 캠페인도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군복을 입은 젤렌스키 대통령이나 무장을 하거나 총기를 다루는 훈련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 웅장함이나 비장함을 불어넣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애국적인(?) 시민들이 늘어날수록 이번 전쟁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 현지의 분위기도 그렇고 전쟁을 지켜보는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인들도 그렇다.
하지만 결과는 생각과는 정반대가 될 공산이 크다. 무장저항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은 저항의 중심을 시민에서 국가로, 또 이 무장저항에 무기를 대는 무기회사들로 이동시킨다. 이런 군사적 충돌은 푸틴이 가장 강한 분야임은 덧붙일 것도 없다. 더 많은 비무장 시민저항을 지지, 지원해야 하고 그랬을 때만이 이 전쟁은 진정한 종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