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펜들. 위로부터 몽블랑 루즈앤느와, 파카75, 후데만년필, 사쿠라겔리롤
오창환
이래 저래 펜을 애정하며 하나둘씩 모으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내가 무인도에 혼자 살아야 된다면, 그런데 만약에 그곳에 펜을 하나만 가져가야 된다고 한다면, 과연 나는 어떤 펜을 가져갈 것인가?
첫 번째 후보는 몽블랑 '루즈 앤 느와'(Rouge et Noir) 만년필이다. 이 만년필은 몽블랑이 창립 110주년을 기념해 스땅달의 소설 <적과 흑>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이 만년필을 보자마자 너무 예뻐서 꼭 갖고 싶었는데 어찌하여 선물로 받게 되었다.
뱀을 모티브로 한 섬세한 디자인과 산호색 붉은 바디가 너무나 멋지다. 필기감은 몽블랑답게 좔좔 잘도 나온다. 그런데 백만 원 가까운 고가 만년필을 거친 표면을 갖고 있는 수채화 종이에 쓰기에는 너무 아깝다. 민감한 펜촉이 상할 것 같다. 아무래도 몽블랑은 고이 모셔두고 필기할 때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두 번째 만년필은 '파카 75'. 파카사가 창립 75주년을 맞이하여 1963년에 출시한 명품 중의 명품이다. 출시 당시 고급 만년필의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고 수많은 일화를 남긴 펜이다. 선친께서 월남전에 참전하셨는데 미군 PX에서 사 가지고 오셨다.
이 만년필이 베트남 평화조약에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 번은 펜촉에 문제가 생겨서 국내 수입사인 '항소'에 수리를 맡겼다. 그런데 출시한 지 50여 년 되는 이 펜의 수리비는 무상이었다. 지금도 잘 쓰고 있는 펜이지만 스케치 하기에는 좀 가늘게 나온다.
다음 만년필은 세일러에서 나온 후대 만년필이다. 이 만년필은 펜촉 끝이 꺾여 있다. 펜을 세워서 쓰면 글씨가 가늘게 나오고 눕혀 쓰면 굵게 나와서 글씨 굵기를 조절할 수 있다. 원래 이런 펜은 캘리그래피용으로 개발된 펜으로 미공필 만년필이라고 한다. 이 펜이 어반스케쳐의 눈에 띄어 지금은 많은 어반스케쳐들이 쓰고 있다. 값도 싸고 무게도 가볍다.
볼펜은 유성 잉크를 사용한다. 유성 잉크는 고급감이 떨어지고 덩어리가 생기는 단점이 있다. 수성 잉크는 색깔이 예쁘고 잘 써지지만 물에 녹기 때문에 수채로 채색을 하게 되면 번지는 단점이 있다. 색도 예쁘고 물애도 녹지 않는 잉크를 개발했는데, 이를 중성 잉크라고, 그런 잉크를 가진 펜을 중성 펜이라고 한다.
나는 옛날부터 사쿠라에서 나온 겔리롤 중성펜을 좋아했다. 이 펜은 파인라이너와 달리 종이를 살짝 파고들면서 잉크를 쏟아낸다. 어반스케치를 하면 여러가지 종이를 사용하게 되는데 , 이 펜의 특징은 종이를 크게 가리지 않고 아무 종이에나 잘 써진다. 색이 예쁘고 가볍고 길다. 그리고 값도 싸다.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만약 펜을 하나만 선택하라면 나라면 중성펜을 갖고 갈 듯싶다. 무인도에서 하루 종일 중성펜으로 사물을 정밀하게 묘사한다면, 지금보다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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