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FC축구교실 김남하 감독
최미향
- 서산에서는 꽤 이름난 스포츠 집안이었다. 가족들을 소개해달라.
"서산시 해미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해미초등학교 축구 지도자셨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 4남매는 모두 다 운동을 좋아했다. 큰누나는 육상, 높이뛰기, 발레를 했고. 둘째 누나는 육상, 포환, 유도국가대표 상비군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었다. 셋째 누나는 태권도와 축구를 하는, 그야말로 우리 집은 스포츠 가족으로 유명했다.
면민 체육대회, 시 체육대회, 도 체육대회, 전국대회가 열리는 곳은 우리 가족들이 만나는 장소였다. 성인이 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막내인 내가 축구 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힘든 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가 기대했던 만큼의 운동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남들보다 힘들고 엄하게 하면 아들이 운동을 그만두리라 생각하셔서 더욱 강하게 운동을 시키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혹독함이 오히려 '좀 더 노력해야겠구나' 스스로를 강하게 채찍질하는 계기가 됐고, 덕분에 초등학교 졸업 당시 서울, 경기의 여러 축구 중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스카우트를 물리치고 나는 해미중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프로 축구 선수 출신의 지도자 박석규 선생님(현 명지중학교 교감)을 만나 전혀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배우게 됐다. 동계 합숙 훈련 중, 눈 쌓인 아침 타이어를 끌어서 운동장 눈을 치웠고 그것도 부족해 울퉁불퉁한 운동장을 평평하게 될 때까지 타이어를 끌어야 했다.
그 당시 다른 신입생들보다 체격이 컸던 내게 박석규 선생님은 친구들보다 더 큰 타이어를 주며 2단 뛰기를 시키셨다. 사실 덩치만 컸지 2단 뛰기를 하지 못한 나를 알에서 깨어나게 해주신 분이 박석규 선생님이시다."
- 살아가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면?
"1992년은 내 생애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가을이었다. 어머니는 충남 체고에 다니던 누나를 만나기 위해 일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논산으로 출발했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덤프트럭과 충돌하여 전신의 뼈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한 달 만에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월요일 새벽이었다.
모든 것이 어두웠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운동도, 밥도,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루가 멀다고 나는 숨어서 혼자 울기만 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문득 저 하늘에서 어머니가 내 모습을 보면서 슬퍼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긴 시간을 보내다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어머니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미친 듯이 훈련에 매달렸다. 아들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