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0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대선 패배를 선언한 뒤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게 다 정의당 때문이야!"
대선이 끝난 다음날 아침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남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랐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재명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싫었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나 같은 입장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둘 다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매우 근소한 차이로 윤석열 후보가 당선인이 됐다.
남편은 낙담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나의 낙담과 남편의 낙담은 깊이가 달랐다. 남편은 예전부터 민주당 지지자였다. 나는 정의당의 당원이다. 낙담의 깊이가 같을 수 없다. 나는 정의당의 당원이기에 양심에 비춰 봐도 우리 당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최악의 선거였다. 정권의 재창출이냐, 정권의 교체냐의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차고 넘쳤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여성가족부(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그의 공약이다.
여가부는 2001년 여성부라는 이름으로 여성 정책을 기획하고 종합하는 기구로 만들었다. 가정 폭력·성폭력을 방지하고 여성의 지위 향상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었다가 2005년 6월 22일 여성가족부로 개편됐다. 여가부가 20년이 넘도록 유지해 온 이유는 여가부의 역할이 단순히 여성정책에만 치중한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윤석열의 공약을, 나는 납득하기 어려웠고 용납이 안 됐다. 안 그래도 남성 여성 갈라치기 논쟁으로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여가부를 폐지한다는 말은 대안이 되지 않을 뿐더러 갈등의 골만 깊게 할 뿐이다. 그밖에도 리더로서의 자질이 검증되지 않아 대통령감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윤석열의 당선만큼은 막고 싶었다
나는 어떻게든 윤석열의 당선을 막고 싶었다. 그의 낙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내가 속한 당 후보에게 표를 주느냐, 싫어하는 사람의 당선을 막기 위해 다른 당 후보에게 표를 주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이번 고민은 강도가 셌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심각하게 오랫동안 고민을 한 적은 없다. 평소의 나는 꽤 즉흥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만약에 후자를 택한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당원들 보기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할 것 같았다.
투표장에 가는 날까지 고민은 거듭됐다.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기표소에 들어서자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차악'을 선택했다. 사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돼 활개치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눈 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아찔했다.
투표 시간이 끝나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매우 근소한 차이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다는 결과다. 좌절했다. 남편에게는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줬다고 말하진 않았다. 남편은 내가 투표장에 가는 것을 보고서도 이번 한 번만 민주당에 표를 주면 안 되겠냐고 하지 않았다. 정말 간절했다면 말이라도 한번 꺼냈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본인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이재명에게 표를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대방의 소중한 투표권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의 고집은 아무도 꺾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서였을까.
최종 개표 결과, 0.73%p차이로 윤석열이 당선했다(대선 결과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은 2.37%, 그외 윤석열 48.56% 이재명 47.83% 등이었음- 편집자 주). 한숨이 나왔다. 윤석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우리 당의 많은 당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이재명에게 표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럼에도 이재명은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