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직접 안내하는 역사 유적 칠중성, 육계토성

파주시민네트워크(준)가 진행한 파주 역사 탐방

등록 2022.03.29 17:04수정 2022.03.2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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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주변이 다 내다보이네." 

3월 27일, 역사 탐방을 온 시민들이 파주 적성의 중성산 정상에 올라 감탄을 쏟았다. 중성산 정상(해발 147미터)에 오르면, 주변 평야 지대가 훤히 내다보인다. 


이 중성산에는 삼국시대에 백제가 처음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칠중성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임진강을 건너오는 적군의 움직임이 한눈에 보이며, 높은 곳에서 진을 치고 방어하기에 적격이다. 이런 조건 덕에 칠중성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두 번의 국제 전쟁에서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칠중성에서 내다본 풍경 칠중성에 오르면 주변이 훤히 내다보인다.
칠중성에서 내다본 풍경칠중성에 오르면 주변이 훤히 내다보인다.서상일
성벽 중성산에는 칠중성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벽중성산에는 칠중성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서상일
 
두 번의 국제 전쟁에서 격전지였던 칠중성

첫 번째, 나당 전쟁이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와 당나라가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다. 675년, 신라는 칠중성에 진을 치고 밀려오는 당나라 군대에 맞섰다. 그렇지만 유인궤가 이끄는 대규모 군대에 버티지 못하고 패배한 역사가 전해진다. 칠중성이 자리한 임진강 주변은 신라와 당이 벌이는 최후의 격전지였다. 

나당 전쟁 이전에도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 신라가 칠중성에서 맞섰다. <삼국사기>에는 661년 칠중성 전투를 이렇게 묘사한다. "고구려 군이 쳐들어오니, 적을 향하여 활을 쏘아 화살이 비 오듯 하였다. 팔다리와 몸이 찢어지고 잘리어 흐르는 피가 뒤꿈치를 적실 정도였다."

이렇듯 칠중성은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 당이 서로 차지하고자 애쓰던 전략적 요충지로서 팽팽한 긴장이 감돈 곳이자, 잦은 전투를 벌이며 성주가 계속 바뀐 곳이었다. 

칠중성에서 벌어진 두 번째 국제 전쟁은 한국전쟁이다. 칠중성에서 영국군과 중공군이 치열하게 맞붙은 설마리 전투가 유명하다. 1951년 4월, 물밀 듯이 쏟아져 내려오는 대규모의 중공군에 맞서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가 칠중성에 진을 치고 버텼다. 무려 나흘을 버티다가 고지를 빼앗기고 후퇴했다.


글로스터 대대가 그렇게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후방에서는 전열을 가다듬어 중공군의 남하를 막아냈다. 칠중성은 한국전쟁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며 대치와 긴장의 중심지였다. 

탐방을 온 시민들은 칠중성의 흔적을 살펴보며 지난 역사를 가늠해 보았다. 한편, 중성산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와 기와 파편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길에 역사의 파편을 줍는 것은 색다른 재미였다.
 
칠중성 탐방 역사 탐방에 참여한 시민들이 최승달 씨의 설명을 듣고 있다.
칠중성 탐방역사 탐방에 참여한 시민들이 최승달 씨의 설명을 듣고 있다.서상일
토기와 기와 파편 칠중성이 있는 중성산에서는 삼국시대 토기와 기와 파편 등을 쉽게 주울 수 있다.
토기와 기와 파편칠중성이 있는 중성산에서는 삼국시대 토기와 기와 파편 등을 쉽게 주울 수 있다.서상일
 
육계토성은 백제의 첫 도읍지일까?


다음 역사 탐방지는 적성면 주월리의 육계토성. S자로 구부러져 흐르는 임진강을 끼고 평야 지대에 자리한 토성으로, 백제 집터와 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육계토성에 대해 "흙으로 쌓아 둘레는 7962척이며, 장단의 호로고루와 상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강 건너편에 호로고루성이 있다. 고구려가 남진하는 시기에 임진강 북쪽 호로고루성을 차지한 고구려와 임진강 남쪽 육계토성을 지키는 백제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했을 테다. 

임진강의 육계토성이 주목받는 이유는 한강의 풍납토성과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이다. 둘 다 강을 낀 평지 토성이며 배후에 산성을 두고 있다. 또 두 곳 모두 초기 백제의 유물이 다량 확인되고 주변에 백제 적석총이 있다. 

풍납토성은 온조가 기원전 6년 천도한 하남위례성이라고 학계의 의견이 모인다. 그렇다면 백제의 첫 도읍지인 하북위례성은 육계토성이 아닐까 추정하게 되는 것이다. 육계토성은 아직 발굴조사 중이다. 앞으로 고대사의 수수께끼 중 하나인 백제의 첫 도읍지가 밝혀질지 기대하게 된다. 
 
육계토성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육계토성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서상일
마을버스(?) 역사 탐방 참여자들은 마을에서 준비한 '트랙터가 이끄는 마을버스'를 타고 농로를 이동하며 육계토성 자리를 둘러본다.
마을버스(?)역사 탐방 참여자들은 마을에서 준비한 '트랙터가 이끄는 마을버스'를 타고 농로를 이동하며 육계토성 자리를 둘러본다. 서상일
육계토성 안내 한배미 마을 주민 유시훈 씨가 '트랙터가 이끄는 마을버스'에서 육계토성을 안내하는 모습이다.
육계토성 안내한배미 마을 주민 유시훈 씨가 '트랙터가 이끄는 마을버스'에서 육계토성을 안내하는 모습이다.서상일
 
주민이 직접 역사 유적 안내하며 마을 소개도 해

이날 답사에서는 '트랙터가 이끄는 마을버스'를 타고 육계토성의 성벽 자리를 보기 위해 농로를 누볐다. 외옹성, 남벽, 내성벽, 자성으로 추정되는 자리를 둘러보고, 발굴조사 중인 국립문화재연구원 조사원의 현장 설명과 파주시 문화관광과의 정비 계획도 함께 들었다.

임진강 주변의 칠중성과 육계토성은 아직 발굴조사와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모르고 보면 그저 산이고 논밭일 뿐인 곳이다. 칠중성은 적성 율포리 마을 주민 최승달씨가, 육계토성은 적성 한배미 마을 주민 유시훈씨가 안내했다. 역사 유적 안내만이 아니라 마을 소개도 함께했으며, 주민이 마을의 역사 유적을 안내한 덕분에 공식 역사만이 아니라 어디서도 듣기 힘든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파주시민네트워크(준)의 역사 탐방은 시민이 함께 배워가는 장으로서 의미가 크다. 또한 역사 탐방 과정에서 역사 유적 안내판과 복원 시설 등에서 부족한 점이나 명백한 오류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를 해당 부서에 알려 시정을 요청했다. 역사 유적 안내판 설치 제안 활동도 계속할 것이라 한다. 주민이 직접 마을의 역사 유적을 안내하고 시민이 함께 지역의 역사를 알아가는 뜻깊은 활동에 많은 시민의 관심과 지원이 있다면 좋을 테다. 
#칠중성 #육계토성 #파주시민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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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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