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중성산에는 칠중성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서상일
두 번의 국제 전쟁에서 격전지였던 칠중성
첫 번째, 나당 전쟁이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와 당나라가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다. 675년, 신라는 칠중성에 진을 치고 밀려오는 당나라 군대에 맞섰다. 그렇지만 유인궤가 이끄는 대규모 군대에 버티지 못하고 패배한 역사가 전해진다. 칠중성이 자리한 임진강 주변은 신라와 당이 벌이는 최후의 격전지였다.
나당 전쟁 이전에도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 신라가 칠중성에서 맞섰다. <삼국사기>에는 661년 칠중성 전투를 이렇게 묘사한다. "고구려 군이 쳐들어오니, 적을 향하여 활을 쏘아 화살이 비 오듯 하였다. 팔다리와 몸이 찢어지고 잘리어 흐르는 피가 뒤꿈치를 적실 정도였다."
이렇듯 칠중성은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 당이 서로 차지하고자 애쓰던 전략적 요충지로서 팽팽한 긴장이 감돈 곳이자, 잦은 전투를 벌이며 성주가 계속 바뀐 곳이었다.
칠중성에서 벌어진 두 번째 국제 전쟁은 한국전쟁이다. 칠중성에서 영국군과 중공군이 치열하게 맞붙은 설마리 전투가 유명하다. 1951년 4월, 물밀 듯이 쏟아져 내려오는 대규모의 중공군에 맞서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가 칠중성에 진을 치고 버텼다. 무려 나흘을 버티다가 고지를 빼앗기고 후퇴했다.
글로스터 대대가 그렇게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후방에서는 전열을 가다듬어 중공군의 남하를 막아냈다. 칠중성은 한국전쟁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며 대치와 긴장의 중심지였다.
탐방을 온 시민들은 칠중성의 흔적을 살펴보며 지난 역사를 가늠해 보았다. 한편, 중성산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와 기와 파편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길에 역사의 파편을 줍는 것은 색다른 재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