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창비
한강 작가의 책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연작 소설이다. 동일한 사건을 영혜 남편의 시선, 인혜의 남편 인호의 시선, 언니 인혜의 시선에서 풀어냈다. 한강은 소설 <채식주의자>로 2016년 5월 아시아 최초로 맨부커상(당시 명칭, 현재는 '부커상'으로 불리고 있다)을 수상한 바 있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인물 영혜는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다. 채식주의자들이 동물성 식품을 입에 대지 않듯. 하지만 영혜가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채식을 지향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채식주의자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소설에서 영혜와 남편은 회사 직원들과 식사 자리를 갖는다. 식사 자리에서 남편 상사의 부인이 영혜에게 채식을 하는 이유를 묻는다. "채식을 하는 이유가 어떤 건가요? 건강 때문에... 아니면 종교적인 거예요?" 영혜가 '꿈' 때문이라고 말하려고 하자 남편은 다급히 영혜의 말을 가로막고서 위장병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육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서로 묻지 않는다. 육식은 기본값이기 때문에 이유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탕평채부터 깐풍기, 참치회까지 십여 가지의 화려한(?) 코스 요리가 나오는 동안 남편은 식사 내내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영혜를 불편해 한다.
비정상과 정상이라는 이상한 구분
소설 <채식주의자>를 보면서 우리 사회 속 '정상성'을 강요하는 폭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고기를 먹는 게 당연한 사회에서 채식은 비정상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우리는 '비정상' 안에서조차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해낸다.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건강, 종교 때문이라면 정상이지만 영혜처럼 꿈 때문이라면 비정상이다. 한강 작가는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채식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끊임없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끔찍한 우리 사회를 고발한다.
2년 넘게 채식을 해 온 나도 사람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받아왔다. 채식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은 물론이고 간혹 그 이유가 논리적인지 '심사'를 받기도 했다. 건강 때문이라면 단백질, 칼슘은 어떻게 섭취하는지를 물었고, 윤리적인 이유 때문이라면 고통의 기준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넘쳐나는 육식인들 사이에서 그 누구도 '육식을 하는 이유'를 서로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묻지 않는다. 육식이 건강에 어떤 영향이 주는지, 어떤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지도 말이다. 다시 말해 육식이 기본값인 사회에서는 채식이라는 비정상성에 대해 규명해야만 하는 무대만이 생겨난다.
이뿐일까. 사실 이러한 비극은 일상에서 공기처럼 존재한다. 부모가 믿는 종교를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 여성은 조신해야 한다는 것, 남성은 질질 짜지 말고 남자다워야 한다는 것.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으로 간주되고 고쳐지거나 치유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린다.
다시 소설로 돌아오자. 가족 식사 자리에서 영혜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라고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탕수육을 먹이겠다고 나서고, 남동생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영혜를 붙잡고 있고, 사위는 이를 지켜만 보고 있고, 언니는 다른 사람들을 말려 보지만 완력에서 밀린다. 결국 아버지는 딸의 입 안에 강제로 탕수육을 짓이긴다.
"처형이 장인을 잡은 팔힘보다 처남이 아내를 잡은 팔힘이 셌으므로, 장인이 처형을 뿌리치고 탕수육을 아내의 입에 갖다 댔다."
- p.50
폭력의 '구조'를 만든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