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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안 따도 화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요

인터넷으로 주문한 꽃으로 부친 화전... 우리 가족 봄맞이 로망을 실현했습니다

등록 2022.04.18 06:10수정 2022.04.1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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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봄 하면 떠오르는 꽃은 개나리와 진달래였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아파트 담벼락마다 가득한 개나리와 동네 뒷산에 가득한 진달래는 언제나 봄의 전령처럼 봄바람을 싣고 왔다. 조금 더 커서는 목련이며 벚꽃 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게 봄 꽃은 개나리와 진달래뿐이었다.


개나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샛노랗고 쨍하고 뚜렷한 모양의 개성이 강한 꽃이라면, 진달래는 조금 덜 흔하면서 모양이 일정치 않게 하늘하늘하고, 색 또한 보라색과 분홍색의 중간쯤 되는 꽃이었다. 개인적으로, 봄은 왠지 위풍당당한 개나리보다는 조금 수줍은 봄처녀 같은 느낌의 진달래와 더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개나리보다는 진달래를 더 좋아했다.

봄을 주문해, 로망을 실현했습니다 

봄이 되면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께 진달래 꽃을 따 먹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화전에 대한 이야기 역시 봄이 되면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였다. 내가 어릴 적엔 산성 비에 대한 이야기가 많던 시절이라 차마 진달래 꽃을 따 먹을 생각은 하지 못 했지만 꽃을 넣어 부쳐 먹는 화전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로망으로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시골에서 자라진 않으셨지만 도시에서도 꽃을 따먹었다며 엄마는 나에게 사루비아를 알려주셨다. 아파트 화단에도, 학교 앞 화분 안에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초입에는 늘 새빨간 사루비아가 몇 그루 있었다.

두산 백과사전에 의하면 정식 명칭은 샐비어(salvia)로 브라질에서 건너온 귀화식물이라고 한다. 허브로 알려져 있는 세이지(sage)와 같은 과의 식물이지만 우리가 아는 사루비아는 주로 관상용으로 심는다고 한다. 야산의 진달래보다는 조금 더 일상 속에 가까이 와 있던 사루비아는 꽃을 따서 뒤쪽을 쪽 빨아보면 달콤한 꿀이 혀 끝에 맺혔다. 어릴 적 친구들과 재미로 한두 개씩 따서 꿀을 빨아 먹곤 했다.


성인이 되어서 처음 식용 꽃을 먹어본 것은 누군가가 데려가 준 꽃 비빔밥 집에서였다. 새싹 채소와 함께 식용 꽃을 가득 얹어준 비빔밥은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았다. 꽃만 따로 먹어보니 별 맛이 안 났지만 비빔밥에서는 어쨌거나 쌉쌀하면서 왠지 모르게 은은한 꽃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 뒤로도 알게 모르게 국화 차나 꽃잎이 들어간 홍차 등으로 식용 꽃을 접해보고 먹어보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나는 아이에게 우리 가족만의 리추얼(기념 의식)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어떤 계절이나 날씨나 상황에서 늘 하는 우리 가족만의 이벤트 같은 것.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를 만들고, 겨울이 되면 얼음 썰매를 타러 가고, 가을이 되면 단풍잎을 모아다가 책 사이에 꽂아서 말려보는, 그런 것들.

봄맞이로는 꽃 구경 말고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화전을 부쳐 먹기로 했다. 아이의 추억 만들기를 빙자한 나의 어린 시절 로망 실현이라고나 할까.

진달래가 워낙 귀하고 어디로 가야 딸 수 있을지도 몰라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식용 꽃을 구입했다. 하루 만에 노란색과 진하고 연한 보라색이 섞여 있는 작은 꽃들이 배달돼 왔다. 비올라라고 쓰여 있는 통 안의 꽃들은 작은 팬지 꽃처럼 생긴 제비꽃과의 꽃이었다. 이 꽃들을 받아 들고도 며칠 동안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나기를 기다려서 드디어 주말, 친정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 집에 가면서 찹쌀가루와 식용 꽃을 챙겼다. 

레시피를 검색해서 적당한 것을 찾은 뒤, 복사 꽃이 만발한 시골 집에서 화전을 만들었다. 식용 꽃은 살살 씻어서 물기가 마르도록 키친 타올 위에 열을 맞춰 올려두었다. 찹쌀가루 1컵에 소금 한 꼬집 넣고 뜨거운 물 8큰술을 기준으로 넣고 숟가락으로 대강 섞어주었다.

물이 모자란 듯해서 물을 조금 더 넣고 숟가락으로 섞었다. 반죽이 제법 뭉쳐지면서 뜨거운 기운이 가실 때, 장갑 낀 손으로 반죽이 매끈하게 하나로 뭉쳐지도록 치댔다. 반죽을 위생 비닐에 넣어서 10분 이상 휴지 시켜준 뒤, 조금씩 떼어서 경단 모양으로 빚어줬다. 달라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반죽을 동그랗게 빚어서 놓을 접시와 손에 낀 장갑에도 식용유를 살짝 묻혀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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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 만드는 과정. 밀대가 없어서 탄산수 병으로 대체했다. ⓒ 김지영

 
밀대로 쓸만한 것이 마땅치 않아 매끈한 탄산수 병에 비닐랩을 감아서 임시 방편으로 사용했다. 도마 위에도 비닐 랩을 깔아서 반죽이 도마에 들러붙는 것을 방지한 뒤, 탄산수 병으로 동그랗게 빚어 둔 반죽을 하나씩 펴줬다. 반죽이 마르지 않도록 종이 포일이나 비닐랩으로 덮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적당히 동그란 모양으로 펴 준 찹쌀 반죽을 겹치지 않게 올려주었다. 약불에서 한쪽 면이 적당히 익으면 뒤집어서 그 위에 꽃을 올려주었다.

밑면도 적당히 익고 나면 꽃을 올린 면을 프라이팬 바닥에 닿도록 한번 뒤집어서 살짝 눌러주고는 바로 불에서 내렸다. 요리를 하는 내내 내 마음은 꽃밭이었다. 왠지 소꿉장난을 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기대하고 고대하던 화전, 그 맛 한번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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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화전. ⓒ 김지영

 
작은 종지에 꿀을 담고, 화전을 접시에 빙 둘러 내니 그럴싸했다. 복사꽃이 만발한 건너편 과수원이 보이는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따끈따끈한 화전을 꿀에 콕 찍어 아이 입에 넣어 줬더니 눈이 동그래지며 엄지를 척 내보인다. 다른 가족들도 꿀을 듬뿍 찍어서 새참으로 맛있게 먹었다.

나도 덩달아 한 입 먹어보니 꿀을 바른 기름에 구운 떡, 딱 그 정도의 맛이었다. 처음으로 먹어 본 화전은 사실 그리 특별한 맛이 나는 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봄 꽃이 만발한 마당에 앉아 가족들과 함께 봄볕 아래에서 먹는 화전은 특별했다.

나는 어릴 적의 로망을 한 가지 실현했고, 부모님은 옛 추억을 소환하셨다. 나의 아이는 봄이 되면 떠오를 만한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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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따스한 봄날에 꽃으로 둘러싸여 꽃을 먹다. ⓒ 김지영

 
벚꽃은 졌지만 봄은 이제 한창이다. 예쁜 꽃을 눈에 담는 꽃 놀이도 좋지만, 화전을 만들어 식탁 위에도 꽃을 담아 보면 어떨까? 가족과 친구들과 눈도 입도 즐거운 화전을 만들어 먹으며 웃음 꽃 피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저의 개인 SNS 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화전레시피 #식용꽃 #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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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여정 위에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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