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영양제를 권해 보려는데...
최은경
어릴 적 몸이 약해 친정엄마의 애간장을 태웠던 나는 일명 기력을 보충한다는 음식과 약에 나름 일가견이 있긴 하다. 몸만 약했던 것이 아니라 체구도 작았던 나는 우리 엄마의 가장 큰 근심거리였고, 그래서였는지 약을 권하는 엄마의 얼굴에서는 늘 비장함이 흘렀다.
그 때문에 엄마가 나에게 주는 약과 음식들을 대할 때, 쉽게 '노'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 한 그릇의 무엇을 만들기 위해 밤새 냄새나는 것들을 손질하고 달였을 정성은 차치하고라도, 그것이 나를 건강하게 할 것이라는 엄마의 그 믿음에는 내가 쉽게 거절할 수 없는 힘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와 달리 내 아이들은 각종 영양제와 보약들을 거부한다. 사실, 약 먹기 싫은 거야 나도 잘 안다. 건강보충제의 효력을 아는 나도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여러 이유를 들며 그것들을 거부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보양식과 보약을 먹으며 최대한 몸을 사리던 어릴 때와 비교해,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며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마흔 중반의 지금 컨디션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건강보충제는 거들 뿐, 진짜 체력 보충은 운동이 제일 낫다는 말이다.
알면서도 할 수 없이 권하게 된다. 운동할 시간도 없고, 운동할 마음도 없는 아이들의 피곤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히 그렇게 된다. 엄마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나는 뭐라도 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혹시나 이런 말에 넘어갈까도 싶어, 비타민계의 에르메스라는 비타민을 권해 보기도 했는데 역시 단박에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런 피로회복제에 의존하는 게 겁난다나 뭐라나. 찾아보니 부작용도 있더라며. 먹다가 안 먹으면 몰려오는 피로함과 무기력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아직 어려서 버틸 만한가 보다, 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그렇지만 시간 없다고 운동도 못하는데 영양제마저도 안 먹이면 너무 무관심한 엄마 같지 않은가. 무책임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영양제를 권해 보려는데 아이의 지친 얼굴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엄마, 나 힘들어서 못살겠어. 엄마가 좋다는 거, 그거 나 먹을래."
어, 나의 정성이 통했나? 하는 반가운 마음도 잠시, 하루 열다섯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딸의 지친 말에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진짜 이 영양제가 마법의 힘이라도 발휘해서 우리 딸 기운이 펄펄 나는 걸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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