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3.1 민주구국선언을 발표 당시 모습.
김대중평화센터
함세웅은 그동안 몇차례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지만 피의자로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옥중 동기생'들과의 '비화'도 적지 않았다.
새벽 한 두시쯤 김대중 선생 등 5, 6명이 첫 차로 서대문구치소로 갔어요. 감옥에 가니 옷 갈아입으라고 해서 퍼런 수의로 갈아입었어요. 거기서 칫솔을 사야 하는데, 돈을 하나도 안 갖고 갔잖아요. 김대중 선생에게 "선생님, 5천원만 꿔주세요." 했더니 웃으면서 돈을 주셨어요. 그러고는 제가 들고 있는 성경을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조금 당황했어요. 감옥에서 성경이라도 껴안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신부님이야 성경박사인데 뭐 성경이 필요해요. 제가 필요하지요." 하면서 달래요. 그 순간 '아, 저분에게 더 필요하겠다' 싶어서 기쁘게 드렸어요.
이제 각 사동으로 헤어지는데 그 시간에도 이문영 교수님은 유머를 하시는 거예요.
"신부님, 선생님, 우리 이거 비행기 탑승하러 가는 것 같아요. 게이트로 갈라지잖아요. 1번 게이트, 2번 게이트."
저는 조금 긴장한 상태로 가면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그런 농담을 하시더라고요. 참 대단한 분이에요. (주석 4)
첫날 서대문구치소에서 배당받은 쓰레기통 같은 방을 두어 시간 동안 깨끗이 청소하고 난 후에 생긴 일이다. 함세웅이 감방에서 잠시 헛된 소유욕에 대해 성찰하게 된 사연이다.
그런데 두 시간쯤 지나갔을까 감방문을 따더니 교도관이 나오래요.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방을 옮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 방에서 나가라고요? 저는 이 방에 있겠어요! 안 갑니다!" 했더니 교도관은 "교도소에서 자기 방이 어디에 있어요?" 하면서 무조건 나오래요. 그런데 저는 억울하잖아요. 열심히 청소를 마친 방인데! 그런데 어떻게 해요? 교도관을 따라갔지요. 그가 복도 중간쯤 되는 방에 저를 밀어 넣었어요. 저는 놀랐죠. 새 방은 너무 좋은 방인 거예요. 바닥도 반들반들하고 윤이 나요.
그 순간 단순하면서도 커다란 사실을 하나 깨달았어요. 그러고는 혼자 웃으며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감방을 두 시간 청소했다고 그 방을 빼앗기기가 싫은 마음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소유욕이란 것을 성찰하고 반성한 거죠. (주석 5)
3. 1구국선언사건으로 함세웅 등 각계의 명사들이 서대문구치소에 잠시 수감되자 이를 '반기는' 수감자들이 있었다. 각종 시국사건이나 긴급조치로 수감된 학생들이다. 반갑기는 함세웅도 마찬가지였다.
구치소에 있던 학생들은 저희 소식에 너무 좋아했어요. 우리 구속 소식을 듣고서는 "환영합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몇 방에 누구 있다! 몇 방에 누구 있다!"하면서 서로 통방하며 기뻐하는 거예요. 한편 몸과 마음은 힘들고 아팠지만, '아, 우리를 역사의 현장, 감옥, 이 고난의 현장으로 이끌어낸 이들이 바로 이 청년학생들이구나! 이들과 함께 있으니 참으로 기쁘다'라는 연대감을 느끼면서 감옥생활을 시작했어요. 노란딱지와 함께 수인번호 명찰을 달았지요. (주석 6)
주석
3> <함세웅의 시대증언>, 136쪽.
4> 앞의 책, 139쪽.
5> 앞의 책, 140쪽.
6> 앞의 책,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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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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