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으로서 최초로 북한 산성을 답사하다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북한산 요새 구축을 논하다

등록 2022.05.10 11:54수정 2022.05.1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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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만찬에 참석한 소감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해야겠군요. 나는 1884년 8월 31일 민영익이 나를 위해 마련한 환영만찬에 참석 하였습니다. 그날 부모님께 편지를 쓰다 말고 허둥지둥 만찬장에 갔지요. 장소는 예전에 어떤 벼슬아치의 저택을 외국 스타일의 호텔로 개조한 곳이었습니다. 왕의 시종, 외교부의 부수장 그리고 참판 등 꽤 많은 사람이 왔더군요.


조선의 전통 음식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습니다. 밥과 고기와 갖가지 반찬, 매우 단 약과, 새콤달콤한 것들, 밀전병, 혼합 음료, 꿀… 산해진미를 나는 거의 숨이 막힐 때까지 먹고 마셨답니다. 잔치에 기녀들도 나왔는데 얼굴에 하얀 분을 발랐고 줄곧 구슬픈 노래를 불렀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음식을 소화시키는데 꼬박 하룻밤이 걸렸지요. 

얼마전에 조선에 부임하던중에 인도에 들렀을 때에 나는 미국의 어떤 교회로 불교에 대한 글을 써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인도에서 워싱톤 서부 장로 교회 목사님 앞으로 불교에 대한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있었답니다. 제 편지가 교회 설교시간에 낭독되었다는군요. 부모님이 재미있어 하실 것 같아 전해 드립니다. 그 편지로 인해 제가 교회 코뮤니티에서 유명해졌답니다. 최근에 저는 교회로부터 한국 종교에 대하여 글을 써 달라는 편지를 받았답니다. 제 글을 받으면 선교사 모임에서 낭독하고 싶다는 군요. 저는 글을 이미 작성해 놓았습니다." - 1884. 9. 2일자 편지에서

8월의 지리한 장마가 걷히자 산들바람이 불었고 나는 여행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내륙으로 탐사 여행을 떠날 생각으로 나는 일찍부터 조바심을 치고 있었지요. 일찍 여행을 떠나려 했으나 바쁜 일과 장마로 미루어졌지요. 나는 먼저 민영익에게 나의 소망을 전했고 고종 임금에게도 알렸지요.

내륙 여행을 하려면 여행증이 필요했습니다. 민영익에게 부탁하여 그걸 손에 넣었는데, 거기에 나의 신분이 미국 관리라는 사실이 누락되어 있는 걸 발견하고 다시 민영익에게 연락하여 조처하였지요. 친절하게도 민명익은 내가 방문할 여러 지방의 수령들에게 서한을 보내 주었답니다.


편지에는 지방 관청에서 나의 모든 경비와 가마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고종 임금은 모든 편의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임금은 내게 큰 규모의 수행단을 붙여주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사양했답니다. 조용히 여행하고 싶어서였지요.

하지만 고종은 굳이 관리 한 명과 함께 두 필의 말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여행 안내를 분부하신 거지요. 내가 상상하기 힘든 제반 편의를 임금이 돌봐주셔서 감명을 받았지요.  

한편, 민영익은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 한 명을 보내 나를 돕도록 해주었지요. 그의 이름은 '수일'이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9월 22일 집에서 출발을 했는데 그 행차가 볼 만했지요. 나는 네 명의 가마꾼이 메는 말쑥한 가마에 올라 앉았답니다. 가마꾼은 헐렁한 흰 옷을 걸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더군요. 곧 나의 개인 수행원인 '묵'과 '수일'이 왔습니다.

수행원도 각기 가마를 타는데 한 명마다 가마꾼 네 명이 붙었습니다. 이어서 임금이 보낸 관리가 말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청록 색깔의 관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끄는 소년은 흰 옷을 입었고 검고 두꺼운 머리를 길게 땋아 등뒤로 넘겼더군요. 그 다음에 별도로 소년 한 명이 짐 말을 끌고 오더군요.

거기에다 내 개인의 하인이 세 명, 국왕의 신하까지 합치면 도합 열 아홉 명의 인원이 행차를 시작하였지요. 우리의 행렬은 먼저 한양 도성의 북동문을 통과하였습니다. 거기에서 변수와 무관 한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겠어요. 그들에겐 각각 네 명의 짐꾼과 하인 한 명이 딸려 있더군요. 이렇게 열 두 명이 불어나자 우리 일행은 모두 31명이 되었지요.

변수와 무관은 나에게 북한산성 요새를 보여줄 생각이라면서 그런 다음 다음 날 돌아갈 거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갑자기 왜 그런 계획을 잡았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얼마 후 그 까닭을 알게 되었지요. 

우리는 북쪽으로 향했고 험준한 산등성이와 화강암 지역을 지나 불교 사찰에 이르렀답니다. 절은 성문 곁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모두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였지요. 산사는 종교 장소로서 보다는 숙소와 리조트로 사용되는 일이 훨씬 많은 것 같았습니다.

성벽 가까운 곳에 요새가 있었고 거길 빠져 나오자 눈 앞에 가파른 협곡이 가로 놓여 있었습니다. 협곡의 양 옆으로는 높이가 1000 내지 3000 피트가 되는 산들이 솟아 있더군요.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산악과 계곡과 가파른 골짜기와 산등성이 뿐이었습니다.

골짜기로 내려가 보니 천연 요새가 형성되어 있더군요. 사방이 모두 큰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봉우리가 3천 피트 높이 솟아 있는 산악의 한 부분으로부터 육중한 성벽이 뻗어 있더군요. 성벽에는 돌로 만든 큰 출입구가 나 있고 육중한 철제 문이 달려 있었습니다.  

협곡 아래로 하얀 암반 위를 급류가 흐르는데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계곡 옆으로 집이 몇 채 숨어 있더군요. 집은 오래된 이끼와 덩굴이 덮인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 중 어떤 것은 곡물 창고였고 또 어떤 것은 근 900년 전부터 조상 대대로 살아온 농가였습니다. 맨 아래 쪽 한적한 어귀에는 고궁이 하나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로 허물어져 있지만 아직도 색상과 조각이 잘 보존되어 있더군요.

거기에서 우리는 큰 절로 이동하였답니다. 머리를 깎은 중들이 모두 군복을 입고 있더군요. 요새화된 절이었습니다. 과거 한때 융성했던 승려 집단은 이제는 위난시에 국왕이 피신할 수 있는 산 속의 경비병으로 변했습니다.  

절에는 세 개의 도금한 불상, 범종 그리고 향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공을 드리러 오는 불자는 없습니다. 중들은 소란스러운 하급 병졸에 불과한 듯 보였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정부로부터 제공받고 있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가다보니 잘 다듬어진 화강암으로 만든 고색 창연한 기념비들이 보였고 아울러 옛적 선비들이 자연 풍광을 즐겼던 자그마한 정자들도 나타났습니다.

산 꼭대기 저 멀리, 고궁의 동서쪽으로는 자그마한 초소들이 보이더군요.  전시엔 그 곳에서 적의 동정을 포착하여 언덕 아래 쪽으로 전달한답니다. 성벽 낮은 곳에 딱 한 군데로는 물줄기가 요새 쪽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고 있군요. 그곳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들이 왜 이런 놀라운, 은밀한 곳을 내게 보여주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일찍이 어떤 외국인도 본 적이 없는 곳을 말이에요. 변수와 무관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동양적인 방식으로 저를 끌어들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넌지시 그곳의 형세에 대해 의견을 묻더니 근대식 요새를 구축한다면 어떤 장소가 좋겠느냐고 조언을 구하는 거였습니다.

나는 이 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오래 전에 이러한 웅장한 요새를 만들 굉장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조지 포크 #북한 산성 #요새 구축 #고종 #민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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