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8월 26일, 건강보험의 차별에 반대하는 이주민과 시민단체들의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청와대 앞에서 열렸다.
이주민 건강보험 차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
방역 정책의 소외계층에 대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 차원이었다는 지자체의 설명은 더욱더 절망적이었다. 감염병의 전파, 치료, 대응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 재난지원금과 방역물품 지원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배제한 채 일률적인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내릴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백신 접종에서 우선순위로 고려하거나, 이주노동자 집단 숙소 등 거주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환경개선 작업이 이루어졌어야 한다.
실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를 필수인력으로 분류하여 1순위로 백신 접종을 진행하기도 했고, 싱가포르는 2020년 4월 이주노동자 기숙사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자 전면적인 환경개선을 시행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선상 호텔을 임시숙소로 제공하고, 총리는 싱가포르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의미를 강조하며 코로나 상황에도 고국으로 떠나지 않고 일터를 지켜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건강권은 인간의 기본권이고, 이는 체류자격이라는 형식적 기준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권리이다. 사회적으로 이주민을 동등한 권리주체로 인식하고 호명하는 수준이 높아질수록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건강권의 보장도 함께 높아질 것이다.
코로나19 방역 정책에서 드러난 또 하나의 문제는 방역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차별적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한 이주민들은 쉴 새 없이 울리는 방역 정보의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고, 공포감만 높아졌다. 질병관리본부 등 공적 기관에서 제공하는 방역 정보는 한국어로만 제공되었기 때문에 방역 정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서울시에서 코로나19 관련 정부 지침을 13개 언어로 번역하여 제공하였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언어적 소통의 장벽은 이주민들이 일상적인 의료기관에서도 자주 느끼는 문제이다. 모든 의료기관에서 외국인 통역사를 고용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공공병원에서는 의료관광객이 아닌 전체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통역사 양성과 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민간 의료기관과 협력하여 통역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보장성은 높이고 진입장벽은 낮추고
이를 위해서는 이주/외국인의 건강보험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부는 2019년 7월 국내에서 6개월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은 건강보험을 의무 가입하도록 제도를 바꾸었다.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고액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거주 외국인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험 가입범위를 확대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구체적인 제도의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주민에 대한 잘못한 이해와 차별적인 편견으로 사실상 외국인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정반대의 제도가 되어버렸다.
우선, 분명한 것은 이주민은 자신이 낸 보험료의 60% 정도에 해당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 의료보험은 매년 수천억 흑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발표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이주민이 낸 보험료는 9733억 원이었고 이주민에게 사용된 급여는 7478억 원으로 산술적으로 2255억 원 흑자를 보았다. 2020년에는 흑자 폭이 5729억으로 늘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인 노동자의 의료급여 지급사례 중 일부를 언급하며 '밥상 숟가락 얹기'라고 표현하거나, 정부기관인 보험공단조차 외국인 보험자의 '먹튀 사례'라고 발표하였는데, 그 발언 자체의 팩트도 틀렸고, 무엇보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밥숟가락 따위에 비교하는 '비문명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부끄러운 발언이다.
현행 이주민 의료보장제도는 정반대로 개선되어야 한다. 체류자격에 따른 가입 제한을 없애고, 국내 체류 기간에 따른 가입 기간 예외 조항도 마련해서 자격취득 요건을 낮추어야 한다. 소득 등에 상관없이 전년도 선주민의 의료보험료 평균액을 부과하는 보험료 산정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외국인 개인의 소득을 고려하여 보험료를 합리적으로 부과하거나, 소득이 낮은 외국인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재조정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결정짓는 건강정책이니만큼 다른 제도와 관련짓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보험료를 체납하는 경우 체류자격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체류 관리 뿐만 아니라 어떠한 제도도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선주민들의 경우 보험료가 체납되더라도 보험급여가 제한되지 않는데, 이주민의 경우에는 1회만 미납되더라도 급여가 제한되는 것도 차별적이다. 사회보험으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고 그 보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공공병원의 운영기관이자 중앙정부의 정책에 조응하여 지역 주민들의 보건과 안전을 책임지는 자치기관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한국 국적이 아니더라도 외국인으로서 지역의 생활 관계가 밀착될 때는 예외적으로 선거권을 부여하고, 거주 외국인 숫자를 반영하여 중앙정부로부터 교부금을 받는 등 국가 기관과 달리 상대적으로 외국인 주민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과 책임이 더 크다. 이번 6.1. 지방선거는 코로나 이후 처음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에서,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고 모두가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제대로 된 건강정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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