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스틸 컷최악의 직장상사 이야기를 다룬 영화
루트원 필름
똑같은 나인데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내가 되기도 한다. 특히 직장에서 권력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느냐가 직장생활의 질을 결정할 때도 있다. 쿨하게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라고 말하고 싶지만,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잘못이나 나쁜 습관 등 누구나 납득할 만한 지적을 받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직장인을 웃게, 울게도 만드는, 직원을 죽이고 살리는 그 이름 상사. 권력자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을 때 직장인은 어깨가 땅에 닿을 만큼 좌절한다.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왜 사무실에 도착해서 이어폰을 빼? 출근할 때 표정이 왜 그래? 말투가 왜 그래? 옷차림이 그게 뭐야? 왜 자리에 앉을 때 한숨을 쉬어? 통화할 때 목소리가 왜 그렇게 커?"
회사 선배가 팀장에게 들었던 말이다. 외부에서 새로운 팀장이 부임하면서 순탄한 직장생활을 이어오던 선배에게 벌어진 참사였다. 팀장은 '나는 네가 너무 싫다'라는 걸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물론 상사 입장에서 거슬리는 무언가를 지적할 수 있다. 선배가 팀장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면담 한번 없이 사소한 일들을 깨알같이 다이어리에 모아 한꺼번에 터뜨린 건 성급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팀장은 어느날 회의실로 선배를 불렀다. 앞서 언급한 못 마땅한 이유를 다이어리에서 찾아 읽었다. 어어 "OO은 인간성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나?"라며 "나는 업무 성과가 아닌 인성으로 인사평가를 할 거야"라고 통보했다.
그동안 선배는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터라 팀장이 꺼낸 카드는 치졸하기 그지없었다. 일 잘하는 부하직원의 큰 장점마저 부인하려 애쓰는 모습,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그는 권력을 분노 표출과 인신공격으로 활용했다. 선배는 인사팀 면담을 통해 다른 팀으로 옮겼고, 팀장은 다양한 문제가 얽히고설켜 결국 회사를 떠났다.
"저렇게 책을 쓰면 업무에 지장 있는 거 아니야?"
회사에 다니면서 첫 책을 출간할 때 대표이사가 추천사를 써줬다. 한 임원이 내 SNS에 근사한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기도 했다. 주변에서 재능, 성실, 부지런 등의 단어가 붙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역사에서 태평성대는 위기라고 했다. 시련은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쳤다. 조직개편 후 바뀐 임원은 나의 출간을 업무와 연결 지어 생각했다. 임원 팀장 회의를 할 때 "저렇게 책을 쓰면 업무에 지장 있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공론화했다. 근거 없는 의심이었다.
권력의 조약돌 하나가 미치는 파급력은 작지 않았다. 팀장도 서서히 비슷한 마음을 드러냈다. 좋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 그렇지 않다는 말을 반복해서 꺼냈다. 오히려 더 신경을 쓰고 조심했지만, 책 쓰는 이미지를 바꾸라는 말도 들어야 했다. 눈치가 보이고 누군가 내 책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위축됐다. 나름의 장점이라 여겼던 취미이자 특기가 천덕꾸러기가 되어 나를 공격했다.
이직할 때 1차 면접을 앞두고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쓴 대표적인 책을 한 권 가지고 오라고 했다. 이후 최종면접을 할 때 들어온 임원은 내 책을 읽고 왔다고 말했다. 놀랐다. 부지런하다는 말로, 큰 장점이라는 말로 나의 글 쓰는 취미를 높이 평가했다. 인사팀에서도 '훌륭하신 분?'이라는 기분 좋은 말을 해주었다. 실제로 이 회사에는 책을 쓴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직원의 특기와 장점을 인정해 주었다.
똑같은 액세서리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직장에서 상급자는 직원의 마음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특권이 있다. 활용법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누군가는 그 선택에 의해 삶의 질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권력 남용이 아닌 권력을 이용한 응원을 던져야 부하직원은 더욱 발전한다.
직원과 회사가 더불어 발전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