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어촌계2, 2020, 혼합 재료, 57.5×42cm물때만 맞으면 밤이고 새벽이고 바다로 달려나가는 삶. 먼우금 사람들은 평생 차디찬 바람 맞으며 갯벌에 뒤엉켜 살아왔다.
최원숙 작가
땅에 갇힌 바다
우리가 아는 인천 송도가 아니다. 개발이 한창인 송도국제도시 6·8공구, 무섭게 내달리는 덤프트럭을 피해 공사장 안으로 들어간다. 척박한 땅을 지나자 눈앞에 수평선이 아득히 펼쳐진다. 지금 발 딛고 선 이 땅도 한때는, 바다였다.
오전 9시, 흙먼지를 날리며 트럭이 하나둘 도착한다. 아직, 바다의 들숨과 날숨에 호흡을 맞추며 살아가는 척전어촌계 사람들이다. 물참엔 나룻배질을 하고 잦감이면 걸어다니던, 멀고도 가까운 바다 '먼우금'.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연수구 옥련동, 청학동, 동춘동을 아우르는 너른 바닷가 벌판엔 백합이며 모시조개, 바지락, 동죽, 꽃게, 낙지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연평도 게보다 송도 게를 더 높이 쳐주던 시절이었다.
박길준(78) 척전어촌계장은 소암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 라마다 송도 호텔이 서 있는 그 자리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 앞까지 파도가 밀려들었다. "황금 바다였어. 그 귀한 백합을 20kg, 30kg씩 거뜬히 캐냈으니까. 1kg당 가격이 5000원, 당시 월급쟁이 한 달 벌이를 하루에 다 벌었지."
몸만 부리면 배는 안 곯고 살았다. 아이들도 일찌감치 학교 대신 바다로 나갔다. 바다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제 모든 것을 내주었다. 기꺼이 품어 안았다. 그 바다가 사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