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나의 해방일지>의 한 장면.
JTBC
추앙.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다. 재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 아니 그보다 더 윗 단계의 감정. 드라마 속 추앙 남녀 염미정과 구씨는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과거가 어땠는지, 현재가 어떤지도 개의치 않고 서로를 추앙해 나간다.
'왜 그랬냐?' '하지 마라', 훈수 두지 않고 참견하지 않는다. 갑자기 떠난다는 상대에게 화를 내긴커녕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숙취로 고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다. 나는 그 의미를 곱씹다가 불현듯 내가 추앙해야 할 대상을 떠올렸다. 바로 내 자식들이었다. 추앙의 의미를 자식에게 대입해 보니 그 풀기 어렵다는 자식 문제를 깔끔히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요즘 내 인생에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자식이다. 사춘기에 들어섰는지, 말도 잘 듣지 않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린다. 이끄는 대로 잘 따라오지도 않고, 반항의 기미도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내 마음대로 안 되니 짜증도 나고 화도 난다. 다 너를 위하고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상처를 주고 또 받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이 불편한 감정은 사랑이 추앙의 단계에 이르지 못해서 드는 마음이 아닐까? 내 마음대로 하려는 감정, 잘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감정, 남들에게 그럴싸해 보이고 싶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생채기를 내는 것이다.
추앙하라는 말에는 불순물이 끼어들 틈이 없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충만하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응원하고 존중하는 마음... 의심, 불안, 질투, 이런 것 따윈 버리고 채우고, 채우고, 또 채워야 한다.
사회의 모든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가 기본 바탕이다. 남녀의 사랑도 부모에 대한 사랑도 추앙으로 발전하긴 어렵다. 하지만 자식은 예외다. 그 사랑의 본질이 추앙이다. 태어난 것만으로도, 존재해주는 것만으로도 우러러 받들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어릴 때, 내가 가졌던 감정은 추앙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래서 불만이야', '니가 그럼 그렇지', '태도 좀 고쳤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믿어준 적도, 절대적으로 응원한 적도 드물다. 마음을 채워주긴커녕, 내 욕심의 펌프로, 있던 사랑도 도로 퍼내고 있었다. 육아서를 백 날 보고, 오은영 매직을 매일 시청해도 내가 아이를 추앙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랑보다 더 깊은 추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