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이나영
씨앗이 발아되어 나올 때의 새싹 모양이 다 다른 것도 텃밭을 재배하며 느끼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잎이 하나씩 나오는 것도 있고, 꼭 둘씩 셋씩 짝을 지어 나오는 아이도 있다. 바질의 새싹은 오동통한 물방울 모양인데 무순의 싹은 귀여운 하트모양이다. 토마토는 단단하게 선 줄기가 올라오고, 루꼴라는 바닥부터 잎사귀가 솟는다.
다들 각자가 원하는 일조량이 있고 물의 양이 다르다. 키우면서 잎을 떼어주거나 가지를 잘라내야 하는 것도 있고 일단 튼튼하고 길게 자라기를 기다려주어야 하는 것도 있다. 싹이 난 뒤에는 얼마나 자랄지, 꽃은 언제 피는지, 언제쯤 수확할 수 있을지를 찾아보는 재미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사무실 베란다에 땅콩호박씨를 심은 게 몇 주 전인데, 그 이후로 초록색 잎들의 안부를 확인하며 지내는 일상이 생활의 큰 기쁨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서, 컴퓨터와 핸드폰의 화면 속 세상에 길들여진 삶에서, 사람에게 치이고, 오가는 말에 다치고, 감정이 상처입는 일이 다반사인 날들 속에서 씨앗을 뚫고 나온 커다란 생명의 기운들을 보는 건 너무나 기운나는 일이었다.
조심스레 설레는 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 사람들의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평생 자신의 정원에서 식물을 가꾸고 정원 일의 즐거움을 찬미했던 작가 헤르만 헤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근면과 노고로 가득 차 있으니 성급함이 없고 걱정 따위도 없는 생활이다. 그런 생활의 밑바탕에는 경건함이 있다. 대지, 물, 공기, 사계의 신성함에 대해 믿음이 있고 식물과 동물들이 지닌 생명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다. "-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헤르만헤세, 웅진지식하우스
그런 믿음을 가지고 평생을 산 대문호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했다. 소박한 정원을 가꾸며 식물을 관찰하고 자연의 신비를 느끼며 자신과의 대화를 하며 그만의 철학과 사상은 더 깊어질 수 있었다.
그저 씨앗일 뿐인데, 흙 속에서 건강한 초록색 싹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 경건해진다. 어떻게하면 잘 자랄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클 수 있을까를, 그 작은 잎을 보며 궁리를 한다. 그리고 매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고 조용히 들뜨고 조심스레 설레는 일이다. 생명에 마음을 기울이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초록색 잎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나또한 '초록을 닮은 사람',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간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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