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폐지저지공동행동 소속 활동가들이 4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여가부 폐지를 반대하며 공동행동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희훈
세계 194개국이 성평등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있다. 그중 독립부처 형식은 2008년 107개국에서 2020년 160개국으로 늘었다. 세계가 구조적 성차별을 인식하고 성평등을 위한 활동이 활발해지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여가부 폐지'가 대선 공약으로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시기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여가부 폐지 공약은 오히려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함을 증명했다. 정치가 주목하는 표심은 남성이고, 공정과 상식이 가부장적 체제를 유지시키는 선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성차별적 전제에서 나온 공약이기 때문이다.
구조적 성차별에 적극적으로 나설 기구가 필요하다
구조적 성차별이 현존하는 현실에서 '여가부'는 적극적 차별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로서 필요하다. 차별시정조치는 역사적으로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아온 특정 집단(구성원)에게 차별로 인한 불이익을 보상해주기 위하여 취업이나 입학 등 기타 사회적 이익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국가는 헌법에 명시된 평등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를 해야 하며 성차별 구조에 책임을 져야한다. 이 때문에 차별시정조치의 일환으로 성평등전담기구를 설치하여 적극적으로 평등을 촉진시키려 한 것이다.
여가부가 역할을 잘했는가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두고, 성평등 전담기구로서 '여가부'는 절실하다. 여가부의 존재는 구조적 성차별의 현존을 의미하고 젠더 감수성으로 문제를 찾아내고 파고들 수 있게 한다. 성평등전담기구는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성차별과 젠더폭력의 문제가 개인의 것이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성차별로 주변화 되고 대상화 되었던 이들의 문제를 공적인 문제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만든다. 그러하기에 여가부는 구체적인 성평등 정책 연구와 제안들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성평등전담기구를 통한 젠더관점 없이 어떻게 젠더폭력의 반복을 막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고용단절 된 중년 여성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고민할 수 있겠는가.
역차별이 아닌 평등을 위한 작업
차별시정조치인 여가부를 남성 역차별로 바라보는 이도 있다. 불만의 목소리가 과잉대표 되어 여가부 폐지 공약이 나왔으나, 차별시정조치는 역차별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개정 및 정책의 수립‧집행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이하 "차별행위"라 한다)로 보지 아니한다(2조 3호)"라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고용영역의 성차별시정조치인 채용목표제에 대해 "종래부터 차별을 받아 왔고 그 결과 현재 불리한 처지에 있는 여성을 유리한 처지에 있는 남성과 동등한 처지에까지 끌어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98헌마363)"라며 합당하다고 판시했다.
국내법을 벗어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인권국제규약에 많이 가입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그중 여성차별철폐협약도 포함되어 있다. 1984년에 가입한 여성차별철폐협약에서는 여성의 교육과 모성 보호 등 여성 차별에 대한 '필요한 조치'가 자주 언급되는데 "남성과 여성 사이의 사실상의 평등을 촉진할 목적으로 당사국이 채택한 잠정적 특별조치는 본 협장에서 정의한 차별로 보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이 분명히 있다
오래전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국제인권규약은 적극적 차별시정조치는 역차별이 아니라고 이미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된 것처럼, 차별시정조치는 항구적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 평등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종료하게 되는 잠정적 조치라는 특성이 있다.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불안해하는 역차별(여가부)은 잘만 하면 빠른 시간 내 없앨 수 있기도 하다. 성평등을 위한 잠정적 조치로서 여가부를 설치했으니 윤석열의 발언대로 구조적 성차별이 없어졌다면 여가부는 폐지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구조적 성차별이 분명하게 실재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2019년 기준 성별임금격차가 32.5%로 불명예스러운 1위에 올라 있으며, 이코노미스트의 2021년 유리천장 지수 조사에서도 최악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2017년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상담 통계분석'에 따르면 가해자가 남성이고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94.9%로, 본질을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라고 보고 있다. 웹툰에서 드라마화 된 <며느라기>는 가족관계에서 겪는 여성 차별을 드러내서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여러 통계와 수치로 구조적 성차별은 확인할 수 있다. 일터와 가정 등 일상의 모든 공간에 만연한 성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가부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성평등전담기구의 역할을 강화시켜야 한다.
여가부 폐지에 찬성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선 올라가 있는 땅의 흙을 퍼 나르며 재공사를 해야 한다. 차별시정조치가 얼핏 보면 역차별처럼 보일지라도 평등을 향한 길에 필요한 작업 중 하나인 것이다. '여가부'도 평등작업 중 하나다.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는 성차별의 현실에서 여가부가 역사적 기능을 다 했다며 폐지하겠다 나서는 건 시기상조다. 물론 언젠가 여가부가 폐지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차별시정조치로서 '여가부'는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다양하고 평등한 세상에서 살기 위한 과정에 아직 성평등 전담기구는 필요하다.
구조적 성차별로 억압받는 모두가 해방될 그날이 되어야 여가부 폐지가 가능하다. 여가부 폐지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우리는 평등과 존엄을 외치며 더 뭉치고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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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사랑하고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로 인권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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